“안전 지켜도 사고 나면 끝”…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달 앞, 혼돈의 中企

입력 2021-12-2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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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얼도 없이 사업주만 책임지냐”…중소기업중앙회 설문, 中企 54% “준수 어렵다”

▲지난해 근로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감식 현장 모습이다. (연합뉴스)

# 경상남도 밀양의 A 열처리 공장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대책을 펼칠 수도 없이 이를 마냥 지켜만 보고 있다. 열처리 근로자들에게 적용할 메뉴얼도 없고,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처벌받게 되는 현실이 다가오자 한탄만 할 뿐이다. 대표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안전 방침을 강화해도 불가항력적 사고가 발생한다면 기업을 운영하기 힘들 것이라 단언한다.

# 인천시의 B 단조공업 대표는 현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용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악법이라고 항변한다. B사 대표는 “근로자들을 교육하고 안전 책임자를 공장에 배치해도 사고가 발생하면 말짱 도루묵 처벌받게 된다”며 “사업주는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사용자 위주의 부주의 책임만 있고 근로자들의 실수로 재해가 발생하면 이는 모두 사업주 책임이 된다”고 강조했다.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특히 법 시행을 앞두고 중소기업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계가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법 해석상 모호한 사항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경영 책임자 범위는 어디까지이고, 준수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항변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이 확인되면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한다. 올해 초 제정된 이 법은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며 50인 이상 중소제조업체는 곧바로 준수해야 한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준비 관련 설명회에서 기업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이날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준비를 하고자 하는 중소기업조차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곳이 많다”며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한 바 있다. 입법 취지와 달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기업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에 맞춰 의무 준수가 불가능한 이유 설문. (사진제공=중소기업중앙회)

문제는 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중소기업들이 준비를 제대로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중기업중앙회는 50인 이상 중소제조기업 322개 사를 대상으로 지난 7일부터 일주일간 ‘중소제조업 중대재해처벌법 준비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50인 이상 중소제조업체의 53.7%는 시행일에 맞춰 의무사항 준수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50~99인 기업은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60.7%로 높게 나타났다. 시행일에 맞춰 의무 준수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의무이해 어려움’(40.2%)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전담인력 부족’(35.0%)도 많았다.

가장 시급한 정부 지원으로는 ‘업종별ㆍ작업별 매뉴얼 보급’(29.9%), ‘안전설비 투자비용 지원’(25.3%), ‘업종ㆍ기업 특성 맞춤형 현장컨설팅 강화’(24.5%) 순으로 나타났다. 또 가장 시급한 입법 보완 필요사항으로는 ‘고의ㆍ중과실 없을 경우 처벌 면책 규정 신설’(74.5%)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태희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50인 이상 제조기업 절반 이상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고, 법상 의무사항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워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며 “사업주 책임이 매우 강한 법인만큼 현장 중심의 지원을 강화해 법 준수 의지가 있는 기업들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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