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데이트 폭력'이라 부르지 마세요

입력 2021-1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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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사회경제부 문화교육팀 기자
친밀한 관계 혹은 연인 사이에서 나타나는 폭력이나 위협을 흔히 '데이트 폭력'이라 부른다. 이 폭력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재범률 또한 높다.

폭력 수위는 절대 친밀하지 않다. 성적인 폭력 외에도 통제·감시·감금·살인미수 등 복합적인 범죄로 이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심지어 연인이 연인을, 혹은 그 가족을 살해하는 사건까지 일어난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용어가 불편해졌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데이트 폭력의 현실, 새롭게 읽기'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경찰청 전국자료로 집계한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1만9940건이다. 이는 2017년 1만4136건 대비 41.1% 나 급등한 수치다. 유형별로는 △폭행·상해 7003건(71.0%) △경범 등 기타 1669명(16.9%) △체포·감금·협박 1067명(10.8%) △성폭력 84명(0.8%) 순이었으며 끝내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도 35건(0.3%)에 달했다.

알려진 피해는 실제 피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스토킹 피해자 10명 중 8명은 피해 당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 연구팀이 국회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 2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06명(80.5%)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피해자들은 "경찰이 믿어줄지 의심스러워 따로 신고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가족도 믿지 않는데 경찰이 믿어줄 리 만무하다는 생각 때문에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피해자가 경찰에 스토킹 피해를 신고할 경우 사건을 접수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관계에서 발생한 단순한 갈등, 끝난 관계를 회복해보려는 시도 정도로 받아들여 신고 취소를 종용하거나 가해자를 편드는 말을 하는 등 2차 피해를 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을 '사랑 싸움'으로 보지 않은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미국에선 1990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모든 주가 반(反)스토킹법을 제정했다. 일본에선 2000년 스토커 규제법이 제정돼 데이트 중 일어난 폭력도 가정폭력의 범주로 본다.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인 단계다. 우리나라의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은 지난 3월 24일 국회를 통과해 10월 21일부터 시행됐다.

더는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 살인 등을 '데이트 폭력'이라 불러선 안 된다. 연인 간의 다툼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희생과 죽음을 접했다. 용기를 내 '신변보호제도'를 신청하거나 가해자를 신고하는 피해자도 있지만, 더 큰 보복이 두렵고 거주지를 알고 있는 가해자가 혹시나 자신의 가족을 해칠 수도 있단 걱정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 그렇게 폭력과 살인은 '우발적 범행'으로 포장돼 버리고, 해마다 수없이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을 보자. '데이트 폭력'이 아닌 '교제 폭력', 나아가 '교제 살인'으로 바꿔 부르는 게 타당하다. 너무나도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관계에서 사건들이 일어났다. '데이트 폭력'처럼 범죄의 심각성을 흐리는 단어는 없다. 사랑하면 때리거나 죽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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