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엊그제 오랫동안 장기입원했던 환자가 분만을 무사히 끝내고 퇴원하면서 “홍유미 선생님께”라는 메모가 적힌 선물을 몰래 스테이션에 두고 갔다. 자궁경부무력증으로 절대안정이 필요해 두 달 가까이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뜨개질을 취미로 삼던 그녀가, 작은 트리 모양의 수세미 몇 개를 내 몫으로 만든 듯했다. 너무 정성스러워 차마 수세미로는 쓸 수가 없어 우리 집 거실 크리스마스트리에 소품으로 걸어두었다. 반짝이는 트리를 볼 때마다 그녀의 간절했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뭉클하다.
나는 당연한 나의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선물을 받을 때면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 산모들은 아파서 병원을 오기보다는 임신이라는, 출산이라는, 선물을 받으러 병원을 오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음 씀씀이가 다른 때보다 더 넉넉하고 따뜻한 것 같다. 이 때문에 산과 병동, 분만실 스테이션은 항상 산모들이 준 선물들, 과일, 피자 등으로 빌 틈이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민망하지만, 주치의 때 나는스테이션에 쌓인 선물들을 응원 삼아 배고픔과 졸음을 쫓았던 것 같다.
이 중에서 가장 최고의 선물은, 가장 맛있는 선물은 누가 뭐라 해도 백일 떡, 돌 떡이다. 가끔 산모들이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가 이렇게 잘 컸다’며 아이를 안고 분만실에 찾아와서 주고 가는 선물인데, 이때만큼은 병원이 떠나갈 듯 분만실 전체에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700g, 1000g 손바닥만 하게 태어났던 아이가 몇 개월 만에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것을 보면, 모양이 어떻든 종류가 무엇이든 이 떡만큼 맛있는 떡이 없다. 나는 이번 연말도 산모들에게 받은 선물에 보답하기 위해, 더 많은 산모들에게 임신과 출산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일한다.
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