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문화지체(cultural lag)

입력 2021-12-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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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소아 환자를 진료할 때 흔히 듣는 질문이 “아이가 항문을 가려워하는데 구충제를 먹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대변이나 항문에 꼼지락대는 벌레가 보인다면 모를까 대부분은 기생충과 상관없는 문제라고 설명을 해도 못 미더워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우리가 위생관념도 최고이고 인분을 주는 농사도 진즉에 사라졌으나 생각만은 아직도 40~50년 전 학교에서 단체로 채변 검사를 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물질문화는 급속도로 변화·발전하는 데 비해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신념, 습관이나 제도 등 비물질적 문화는 그렇지 못한 현상을 문화지체(cultural lag)라 한다. 자동차는 첨단을 달리는 반면 교통문화나 제도는 후진성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쉬운 예라 하겠다.

영화 ‘모가디슈’에서 북한 측이 보낸 테러범들에 의해 공항 도로에서 한국 대사관 차량이 테러를 당한다. 가까스로 현장을 벗어난 외교관들은 대사관에 도착하고 차량을 운전하던 현지인 운전사는 이마에 부상을 입었다. 이때 대사 부인이 운전사에게 무와 양파를 건네며 집에 가 갈아서 상처에 붙이라고 한다. 대사 부인을 이해한다. 약은 없고,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채소를 건네는 마음을.

하지만 운동을 하다가 상처가 났다고 하자. 그래서 무를 붙인다면? 이건 이해할 수 없다. 소독약과 거즈와 상처연고를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한 친구가 양파가 염증에 좋다며 민간요법을 카톡에 올렸다. 상처가 나면 양파를 붙이고,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눈꺼풀에 양파를 올려놓고, 중이염이 있으면 양파 즙을 짜 귀에 넣고 등등이다. 의사로서 모른 체하기 어려웠다.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하자 수천 년을 내려오는 민간요법이라는 댓글을 단다. 등산을 가서 벌에 쏘이면 침을 발라야 하지만 아파트 화단에서 쏘이면 약을 바를 일이다.

아무쪼록 의료 분야에는 문화지체 현상이 얼른 사라져 제대로 된 치료를 스마트하게 받았으면 좋겠다. 이제 예순이 지나 철도 들고 여러모로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지금도 30년 전의 실수를 가지고 공격을 한다. 이 또한 문화지체라고 주장하고 싶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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