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자격

입력 2021-11-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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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사 먹게 2만 원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1월 7일 페이스북에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고 “희망 잃은 청년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청년 등 미래 세대를 위한 각종 개혁 작업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의 권위를 앞세우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은 입버릇처럼 민생을 외친다. 민생은 이재명·윤석열 대선 후보들 입에서도 빠지는 법이 없다. 청년층이 내년 대선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자 청년 주거대책, 일자리 만들기 등 사탕발림으로 ‘영(Young)끌’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너무 가볍다. 손에 잡히는 해법이 없는 탓이다.

지금 민생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는 집과 부채, 일자리 문제의 본질을 살피는 것이 우선일 게다.

한국은행의 ‘2020년 국민대차대조표(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민순자산은 1경 7722조2000억 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1933조2000억 원) 대비 9.2배 수준이다. 우리나라 금융자산은 모두 1경 7215조 원이 넘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거의 같은 금액의 금융부채가 있다. 금융시장에서 누군가의 자산은 누군가의 부채다. 이 둘은 거의 모두 상쇄된다. 따라서 순자산으로 따진 국부는 거의 모두가 비금융자산인 셈이다.

실제로 국부의 86%인 1경 5201조 원이 부동산 자산이다. 이 중 토지자산이 9679조4000억 원, 건설자산이 5522조4000억 원이었다. 토지자산과 건설자산의 증가분을 합하면 1094조6000억 원으로 작년 국부 증가분을 웃돈다. 주거용 부동산 가치는 5721조 원이 넘는다. 가계 부문 순자산은 1경 423조 원으로 가구당 5억1220만 원꼴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퍼즐에 어떤 문제가 숨어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집이 안고 있는 버블의 위험이다. 주택은 가계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주거용 부동산 가치는 가계가 보유한 주식과 펀드 순자산의 7배나 된다. 주택시장에는 모든 금융 리스크가 집중돼 있다.

최근 상황을 보면 가처분소득이 주택 시가총액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더 가팔랐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문재인 정부 4년(2017~2020년) 동안 주택시가총액은 1716조4950억원 늘었다. 이 같은 증가폭은 통계를 작성한 1995년 이후 집권한 정권 가운데 가장 컸다. 가계의 벌이에 비해 주택시장이 너무 빨리 팽창하는 건 위험하다. 다음세대에 빚더미를 전가하는 꼴밖에 안 된다.

주택은 유동성이 부족한 자산이다. 10~20억 원대 아파트를 갖고도 노년을 가난하게 보내는 이들이 많다. 개미처럼 일해 번듯한 집을 장만했더라도 집만 깔고 앉아 있으면 땀 흘린 보람이 없다. 이들이 집을 맡기고 연금을 받아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주택연금이 있다. 하지만 집값이 뛰자 해지하는 이들이 급증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이 주택금융공사로부터 받은 ‘연도별 주택연금 해지’ 자료를 보면 올해 9월 말까지 주택연금 해지량은 3185건이나 된다. 올해 9개월간 해지량은 2017년 전체 해지량 1257건의 무려 2.5배나 된다. 연금보다 집값이 뛰었을 때 평가차익이 더 많기 때문이다. GDP의 약 3배에 이르는 주택자산을 유동화할 새로운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시장금리가 뛰고 인플레이션이 오더라도 소비 수요를 최소한 유지는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투자와 일자리가 늘면 집값을 받쳐줄 수 있다.

또 다른 하나가 부채다. 지난 9월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 잔액은 1844조9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2.4%로 역대 최대 수준까지 올랐다. 집값이 내려가거나 금리가 오르면 금세 부실의 늪에 빠질 게 뻔하다. 취약 가구는 더 우려스럽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32만 가구였던 고위험가구는 지난해 40만3000가구로 증가했다. 이들이 부채가 있는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2.9%에서 3.4%로 늘었다. 고위험 가구가 진 빚은 2016년 58조5000억 원에서 작년 79조8000억 원으로 36.4% 증가했다.

역사적으로 자산 버블 중 가장 파괴적인 것은 주택시장 거품이었다. 이 거품은 늘 급격한 신용 팽창과 더불어 나타난다.

일자리가 말라가고 있는 점은 더 우려스럽다. 소득이 없는 가계는 집을 살 수도 빚을 갚을 수도 없다. 2016년 4만2000가구(13.2%)였던 무직자 고위험가구 수는 2019년 5만2000가구(13.8%), 2020년 6만6000가구(16.4%)로 증가했다. 이들이 진 빚은 2016년 3조 원에서 지난해 6조5000억 원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제로(0)금리 시대가 끝나면서 빚 부담은 더 커졌다 빚 문제가 연착률하지 못한다면 사회ㆍ경제 전반을 뿌리채 흔들수 있다.

민생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주택과 빚, 일자리 문제가 안고 있는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 대선 주자의 자격이 없다. 서민들은 눈물을 닦아줄 리더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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