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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IT 강국의 ‘문송’ 학생들

입력 2021-11-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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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영 부국장 겸 유통바이오부장

올해 처음 치러진 문·이과 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불수능’을 넘어 ‘마그마 수능’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문과 학생과 이과 학생이 모두 공통과목(수학 1, 2)을 응시한 데다 문제가 어렵게 출제되면서 문과생들에게 더 불리하다는 아우성이 들린다.

수능 결과 보도를 보면서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싱가포르 대학에 딸을 유학 보낸 지인은 딸 전공이 철학이라 밥이나 먹고 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취업을 했다고 자랑했다. 그의 딸이 취업한 곳은 인공지능(AI) 회사다. 그곳에서 AI에 머신러닝을 시키는 업무를 한다.

미국 IT기업들 사이에서 철학, 윤리 등 인문학 전공자의 몸값이 치솟는다는 기사를 몇 년 전부터 본 적은 있지만 ‘문과라서 죄송한’ 국내 현실에서 실제 사례를 듣고 보니 신기했다. 국내에서는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로 불리는 주요 IT기업들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개발자 확보 전쟁이 치열하다. 비대면 디지털 경제로 급속히 전환하면서 개발자 인력이 예상보다 더 빨리, 많이 필요해지기도 했겠지만 근본적으로 국내 기술 인력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 IT강국에 오른 지 오래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부르짖은 지 오래이지만,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올해 처음 실시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수능 응시자 가운데 그동안 7대 3이었던 문과와 이과 비중이 그나마 올해 5대 5 수준으로 바뀌었다. 이제서야 문과·이과가 반반으로 맞춰졌는데 기업들은 대부분 이과 출신 취업자 위주로 뽑으니 이과 출신자들은 부족하고 문과 출신들은 취업이 안 돼 죄송할 뿐이다.

결국 청년실업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 국내 취업 시장에서 최근 3년간 구직활동을 포기한 20~30대 중에서는 이공계 전공자가 2만 명 늘어나는 동안 인문계 전공자는 5배 이상 많은 11만 명 이상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문·이과 구분을 넘어 인문계 교육과 IT 교육을 함께 함양한 융합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국내 교육 현장에서는 적용되는 속도가 매우 더디다.

그나마 대학은 AI 전공 과를 신설하고 AI를 교양 필수 과목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성균관대학교는 학생들이 AI 관련 과목을 9~11학점 이상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카이스트는 지난해 융합인재학부를 신설한 후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고 접목하는 문제해결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점을 없앴다. 하지만 이마저도 미국 영국 독일 등 해외 명문 대학들이 AI·빅데이터 관련 교육 과정을 최근 3년 새 2배 늘리는 것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다.

초·중·고교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영국, 미국 등은 초중고 학생들에게 연간 300~400시간씩 의무적으로 컴퓨터, 코딩 관련 교육을 시킨다. 중국은 초등교육에서 지역별로 80시간에서 최대 270시간까지 소프트웨어 교육에 배정한다. 반면 우리나라 SW 교육 시수는 초등학교 17시간, 중학교 34시간에 그친다.

선진국에 비해 이과 교육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문과 교육을 제대로 해왔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수능 출제위원장(위수민 한국교원대 교수)은 한 인터뷰에서 “올해 수능이 예년과 난이도 차이가 크지 않은데 불수능이라고 해 당황스럽다며 수험생들이 독서 부족으로 ‘비문학 상식’을 생소해한 것 같다”고 말한 내용은 곱씹어볼 만하다.

이래서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문·이과 통합 수능 도입으로 수능 당사자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첫 단추는 뀄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선진국처럼 초중고 공교육 시스템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융합형 인재 양성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패스트 팔로어(추격자)가 아닌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전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교육 당국은, 차기 대통령 후보들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미래 비전을 마련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h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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