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그만" 식품ㆍ패션업계, MZ 직원이 만든 콘텐츠 마케팅 '대박'

입력 2021-11-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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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인가 의심할 정도로 고품질의 CG 화면을 배경으로 양(羊)이 신세 한탄을 한다. 출시된 지 60년이 된 삼양라면의 '삼양'을 따서 만든 캐릭터다. 극 중 최대 빌런 격인 불닭볶음면의 마스코트 '호치'의 등장으로 존재론적 고민에 빠진다는 게 핵심 줄거리다. 삼양식품의 유튜브 디지털콘텐츠 스토리다. 영상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조회 수만 50만에 육박한 데 이어 19일 기준 842만 회를 돌파했다. 사내 MZ세대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 탄생한 결과물이다.

▲삼양식품 유튜브 콘텐츠 '평범하게 위대하게'. (삼양식품)

21일 이투데이 취재 결과 식품, 패션 등 소비재 업계에서 MZ세대 직원들이 콘텐츠 마케팅의 일등공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윗선의 개입이 없는 자유로운 환경이 혁신적 아이디어 탄생의 비결이다. 소비 핵심축으로 떠오른 MZ세대와 공감대 형성이 충분하다는 등의 이유로 이들 의견이 참고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닌 콘텐츠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삼양식품이 선보인 ‘평범하게 위대하게’ 유튜브 콘텐츠가 대표적 사례다. 사내 마케팅 소속 MZ 직원은 물론 B급 마케팅 열풍을 불러일으킨 빙그레의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캐릭터를 창조한 '스튜디오 좋'과 함께 기획을 진행해 탄생했다. 애니메이션 기반 뮤지컬 형태로 제작해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한 삼양라면의 역사와 전통에 관한 메시지를 담아냈다.

신선한 젊은 피 수혈을 위해 MZ직원들로만 이뤄진 사내 벤처팀을 굴리기도 한다. 최근 LF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LF몰 내 ESG 전문관 ‘L:Earth(러스)’를 열었다. 비건 뷰티, 친환경 에코백 등 다양한 패션 뷰티 아이템들이 들어선 온라인숍 개념으로, 사내 인재 육성 교육 프로그램 중 MZ세대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모아 제안한 ESG 프로젝트다. 친환경 흐름과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에 발맞춰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자는 목적에서 기획됐다.

▲_LF몰 ESG 전문관 ‘LEarth’ 론칭 포스터. (LF)
MZ직원들의 활약이 유독 돋보이는 건 마케팅 영역에서 온라인 바이럴 입김이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 한번 입소문이 나면 화제에 오르고 대박이 나는 만큼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의 역량이 사측에선 필수라는 뜻이다. 한 식품회사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이 만든 영상들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영상부터 기획까지 척척 자기들이 알아서 다 한다"라면서 "만약 이들이 회사를 나가기라도 한다면 큰일일 것이다. 우리들은 손도 못 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hy가 선보인 사이버 아이돌그룹 역시 사내 아이돌 연습생 그룹 출신인 MZ직원들의 작품이다. hy 마케팅부 소속 2년 차 직원 2명이 주도했다. 한 명이 실제 아이돌 연습생 출신이라면 다른 한 명은 실제 아이돌 덕후다. 이들이 진행한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캐릭터별 목소리 주인공을 모집했다. 경쟁률만 216:1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였던 오디션을 바탕으로 hy 제품의 특징을 살린 ‘부캐(副캐릭터)’ 5인조 ‘HY-FIVE’가 만들어졌고 음원까지 출시됐다. 이 과정에서 회사 윗선의 간섭은 일절 없었다고 알려졌다.

톡톡 튀는 MZ 직원의 아이디어로 관련 콘텐츠들이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MZ 직원들의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한 패션 대기업 디지털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20대 A 씨는 "하루 시간 주고 아이디어를 쥐어짜내라는 식인데 힘들 때가 많다"라면서 "그래도 조회 수가 잘 나오고 화제가 되면 뿌듯함을 느낀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개입이 있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기업 종사자 20대 B 씨는 "최근 '오징어게임'이 유행이어서 관련 마케팅 아이디어를 내보라는 지시를 받고 동년배 팀원들끼리 한동안 비상이었다. 솔직히 나는 드라마 자체가 폭력적이고 재미도 없었다. 오히려 상사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라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팀원들이랑 제품 아이디어나 인스타그램 마케팅을 내긴 냈다. 유행에 편승하는 것 같아 좀 창피했다. 그래도 화제는 되더라"라고 소회를 밝혔다.

▲사이버 아이돌 ‘HY-FIVE’. (hy)
업계 관계자들은 MZ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식품기업 관계자는 "망하는 콘텐츠들은 다 이유가 있다. 윗선에서 이것저것 좀 추가해보라는 지시를 다 듣다 보면 처음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더라도 나중엔 망가져 버린다"라면서 "MZ 직원들이 타깃층인 MZ세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이들의 아이디어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등 접근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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