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층 보호’ 해외에선
日, 거래실적 기반 송금 한도 제한
EU, 중앙銀 피싱 분석자료 공개
전자우편이나 메신저 등을 이용해 개인의 금융, 신원 정보를 불법으로 빼 가는 ‘피싱(phishing)’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정교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피싱 사기에 취약한 고령층의 피해가 급증함에 따라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일부 국가에서는 개개인의 주의만으로는 피싱 사기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 국가가 피싱 사기를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3일 이투데이가 국회입법조사처 등 자료를 취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최근 ‘사기 및 스캠 방지법안(Fraud and Scam Reduction Act)’이 미국 하원을 통과해 상원에 상정돼 있다. 이 법안에는 사기 대상이 되기 쉬운 고령층을 보호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 재무장관, 법무장관, 소비자금융보호국장, 소매업·통신·송금서비스·디지털금융서비스 업체 및 소비자단체 대표 등이 ‘고령층 사기 방지 자문그룹’으로 구성돼 있다. 이 그룹은 고령층 사기를 식별하고 예방하기 위한 교육 방법, 최신 사례, 식별 기술 등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 고령층 보호를 위한 정책을 수립한다. 연방거래위원회는 메일, 인터넷, 텔레마케팅, 로봇콜 등을 이용해 고령층 대상 사기를 모니터링하고 소비자보호국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부서를 설립한다.
일본은 피싱 취약 계층, 특히 고령층에 집중한 피싱 사기 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 경찰청은 피싱 사기 수사 과정에서 발견한 파일 내 대상자에게 주의 환기 전화를 걸 때 고령층을 우선 하고, 65세 이상 고령층에는 자동녹음 기능이 부착된 보이스피싱 예방 전화기 구입비를 보조하고 있다. 경찰청은 금융회사에 일정 기간 현금자동인출기(ATM) 송금 실적이 없는 은퇴자의 송금 한도를 0엔으로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은 중앙은행, 지급결제시스템 운영기관 등이 지급수단 사기 데이터를 분석한 정보를 공개해 피싱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유럽은행은 2012년부터 카드 사기에 대한 보고서를 총 5회 발표하고 있으며, 은행·금융기업들로 구성된 영국 금융협회는 연 2회 지급수단 사기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피싱 사기에 대한 관리·감독 시스템을 참고해 우리나라에서도 피싱 사기 대응책을 한 단계 진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소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피싱 사기 수법과 수단이 점차 고도화되고 피해가 증가함에 따라 피싱 사기 방지와 처벌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조사관은 다른 국가들처럼 피싱 사기 취약층에 대한 개별 예방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모바일 기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피싱 사기의 표적이 된 고령층에 대한 개별적인 예방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액 중 60대 이상 비율이 2016년 13.3%에서 지난해 29%로 급증했다.
박 조사관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피싱예방 전화기 구입비를 지원하고, 범죄 대상 가능성이 높은 대상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위험을 알리며, 관련 교육을 강화한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살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통신사, 플랫폼기업, 은행에 기술 발전과 통신 이용 방식 변화에 따른 새로운 피싱 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인물의 얼굴과 목소리를 모방하는 딥페이크 기술이 피싱 사기에 사용되면서 개인 스스로 피싱 사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고 있어 기업 차원에서 피싱사기 탐지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메신저앱을 통한 피싱 사기가 증가함에 따라 ‘전기통신사업법’에서 휴대전화번호 변작 금지뿐만 아니라 메신저앱 사칭 계정도 금지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