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엄마와 이 중사 엄마는 약속했다…“건강하자, 그래야 싸울 수 있다”

입력 2021-10-20 23:43수정 2021-10-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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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병 사건'의 유족들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 추모 시민분향소를 찾아 유족를 위로하고 있다. (유혜림 기자 wiseforest@)

끝까지 싸우려면 건강해야 해요. (고(故) 윤승주 일병 모친 안미자 씨)

군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고 이예람 중사의 부모와 '윤 일병 사건'의 유가족이 20일 국방부 앞 이 중사의 분향소에서 한참 동안 손을 맞잡았다. 여전히 군 사법부와 싸우고 있는 윤 일병 어머니와 누나는 "건강 잃지 않아야 싸울 수 있다"며 굳은 마음을 당부했다.

윤 일병 유가족과 시민들은 이날 오후 8시께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마련된 이예람 중사 분향소를 찾아 이 중사의 죽음을 위로했다. 이날 분향소에는 군에서 자녀를 잃은 경험이 있는 다른 유족들도 방문해 곁을 지켰다.

같은 슬픔으로 만난 자리에서 부모들은 서로에게 "힘내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선임들의 가혹 행위 끝에 숨진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 씨는 "우리 승주가 (살아있다면) 30살 되겠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큰누나인 윤선영 씨도 "길어질수록 힘들어지니 무엇보다 건강 잘 챙기셔야 한다"고 말하자 이 중사 어머니는 "감사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윤 일병' 사건 이후 달라진 건 없었다

안미자 씨는 기자와 만나 윤 일병 사건과 이 중사 사건이 닮았다고 했다.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군인권보호관 설치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사실 관련 논의는 그 이전인 2014년 윤 일병 사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7년 전, 우리 승주 사건이랑 똑같다. 재판과정에서부터 (군이) 은폐하고 축소하려 하고. 이 중사 아버지는 센터(군인권센터)에서 만나기도 했지만, 꼭 한번 (이 중사) 엄마를 만나고 싶어 오늘 이 자리에 왔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승주 사건이 난 7년 뒤에도 또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군대는 사법 개혁이니 인권 보호관을 도입하니 외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재판도 계속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윤 일병 사건' 유가족들은 국가와 가해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주범인 당시 병장 이씨가 형사 처벌을 받았지만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한 군 당국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오는 12월 15일 공판 기일이 잡혔다고 알려줬다.

앞서 초기 군 당국은 초동 수사에서 윤 일병이 질식사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군인권센터는 윤 일병이 가혹 행위로 인한 외상성 뇌 손상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면서 재수사를 촉구했다. 결국, 뒤늦게 군은 재수사에 나섰고, 윤 일병의 사인은 질식사가 아닌 가혹 행위에 따른 '좌멸증후군' 및 '속발성 쇼크'로 밝혀졌다.

이 중사 아버지 역시 기자와 만나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그는 "국방부 검찰단에 있는 사람들이 모조리 증거불충분, 무혐의 이런 식으로 나왔다. 나라 믿고 아들딸 맡기는 부모들이 지켜보고 있다. 국방부 장관과도 여덟 차례 만나도 봤지만 이제 더는 (장관을) 신임하지 않는다. 제대로 수사를 하려면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 검찰은 공군 법무실장 및 고등검찰부장, 제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대대장, 담당 수사관 등 4명의 불기소 결정문에 일제히 '증거 불충분하여 혐의 없다'고 적시했다.

특히 군 검찰은 공군 제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대대장에 대해서는 "(성추행) 가해자의 추가 범행에 대해 법리를 면밀히 검토하지 아니하고, 동료 부사관으로부터 피해자와의 녹음파일을 입수하지 아니한 것 등은 수사가 미진했던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유족 트라우마 "군복 입은 청년, 동생 생각나"

▲이날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게시판에는 '예람!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기억할게. 예비역 선배가', 편히 쉬세요. 억울함 꼭 풀어드리겠습니다' 등이 담긴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유혜림 기자 wiseforest@)

윤 일병의 큰누나인 윤선영 씨는 유족들이 겪게 될 트라우마를 걱정했다. 그는 군에서 연락받은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윤 씨는 "승주가 떠난 뒤, 군복 입은 사람들만 보면 다 동생 같아서 저도 모르게 계속 쳐다보고 있더라"라고 운을 뗐다. 이어 "일요일 오후 4시가 될 때마다 '이상한 연락'이 올까 봐 마음이 불안했다"며 "3, 4년을 그렇게 지냈다"고 털어놓았다.

이 중사의 어머니는 윤 일병 유족과 만난 뒤 기자에게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라 더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마웠다"고 했다. 이어 "나도 이겨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힘이 너무 든다. 나는 언제 3, 4년이 7년이 지날지. 그냥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 중사 어머니는 오는 조문객마다 "우리 예람이 정말 예쁜 딸입니다. 부디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군인권센터와 유족 측은 이날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분향소를 지키며 시민들의 조문을 받았다. 전일 분향소는 옥외 집회라는 이유로 서울시와 용산경찰서로부터 금지 통보를 받았지만, 법원이 군인권센터가 제기한 집행정지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이날 3시간 동안 설치될 수 있었다.

한편, 이 중사는 지난 3월 임관 상급자 장모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신고한 뒤 장 중사 및 다른 상관으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 이후 전출 부대에서 신상유포 등 2차 가해에 시달리다 지난 5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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