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리 인상으로 집값 잡겠나

입력 2021-10-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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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부국장 겸 부동산부장

통화당국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속된 ‘유동성 파티’의 흥을 깨는 악역을 자처하고 나선 모양새다. 전대미문의 규모로 불어난 가계부채와 미친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이란 수단에 기대보겠다는 거다.

한국은행은 8월 말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0.75%로 0.25%포인트 올렸다. 작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스리랑카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 중에선 첫 인상이다. 한은은 통상 미국·일본·유럽 등 주요국이 먼저 금리를 조정하면 뒤따라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먼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과잉 유동성 탓에 부풀 대로 부푼 부동산 등 자산 거품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 부채(2분기 기준 1805조9000억 원)를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묻어난다. 물가까지 들썩이는 판이라 이번 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연내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기준금리가 추가로 0.25%포인트 올라 연 1.0% 수준이 되면 가계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는 지난해 말보다 6조 원 가까이 불어난다고 한다.

기준금리 인상은 어떤 의미에서 극약 처방이다.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지방의 금리가 다르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르지 않는다.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늘면 민간 소비는 줄고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은 벼랑 끝으로 내몰 공산이 크다. 그래서 중앙은행 입장에서 금리 인상은 인하보다 훨씬 어렵다. 정치권이나 정부도 선제적 금리 인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번엔 여당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이 추가 금리 인상을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하기야 이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여태까지 내놓은 숱한 대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도 하다. 정책 수단이 사실상 소진한 상태다 보니 돈줄 죄기를 통해서라도 부동산시장이 안정되길 기대해보겠다는 것이리라.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집값만을 위해 (금리 인상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하지만, 어쨌든 한은은 졸지에 ‘집값 파이터’로 총대를 멘 꼴이 돼 버렸다.

정부는 금리 인상에 마지막 기대를 거는 눈치지만,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 정도만으로는 집값을 잡기 힘들다는 분석이 많다. 집값 하락보다는 상승 요인이 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하반기 입주 물량이 전년 동기 대비 줄어들고 정부가 호언장담한 공급 대책 역시 주민 참여 저조 등으로 속도를 못 내고 있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도 부동산 시장엔 리스크 요인이다. 선거 국면에선 추가적인 부동산 규제가 나오기 어렵다. 오히려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 지역 개발 공약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당국의 금리 인상과 금융권의 대출 억제에도 부동산 매수심리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고 집값은 연일 급등세다.

과거 사례를 봐도 금리 인상에도 집값이 더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2005년 10월 3.50%에서 2008년 8월 5.25%까지 총 8차례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전국 아파트값은 20.99% 올랐다(KB주택가격 동향 조사). 또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1년간 기준금리가 다섯 차례 걸쳐 올랐지만 전국 아파트값은 12.08% 상승했다.

금리 인상으로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의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한다. 넘쳐나는 유동성이 집값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집값 안정을 위해 통화 정책을 펴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집값을 잡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각종 규제나 금리 인상이 아닌 제대로 된 공급이다. 이를 위해선 분양가 상한제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 규제 대못을 뽑고 신규 공급의 바통을 민간에 넘겨야 한다. 그래야 양질의 대량 주택 공급이 가능해진다. 매물 출회를 막는 징벌적 세제도 손볼 필요가 있다. 다주택자 보유 매물이 시장에 나오도록 한시적으로라도 양도세를 낮춰야 한다. 부동산 세제 완화와 민간 공급 확대 없이는 결코 집값 안정을 도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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