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1억짜리 백지’·‘엉덩이골 애국 동상’·‘쥴리’ 예술·비예술의 경계에 선 작품들

입력 2021-09-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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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해묵은 논란이다. 그런데 최근 특정 작품들을 두고 예술·비예술 여부, 표현의 자유 범위에 대한 논란이 다시 뜨겁게 일고 있다.

▲덴마크 미술가 옌스 호닝이 1억 원을 받고 출품한 백지 캔버스 작품 '돈을 갖고 튀어라' (연합뉴스)

“계약 위반도 예술 작품 될 수 있다” 1억 받고 빈 캠퍼스 낸 덴마크 작가

덴마크 미술가 옌스 호닝은 최근 미술관에 의뢰를 받아 출품한 작품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덴마크 쿤스텐 현대미술관은 지난 24일 개막한 ‘워크 잇 아웃(Work It Out)’ 전시회에서 찢긴 흔적만 남은 빈 캔버스인 호닝의 작품 ‘돈을 갖고 튀어라’를 전시했다.

해당 전시회는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탐색한다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기획됐다. 미술관은 그간 권력과 불평등 등을 주제로 꾸준한 예술 활동을 이어온 호닝에 제작비와 작가비를 제공하고 ‘덴마크와 오스트리아 국민의 연평균 소득’을 주제로 한 2개 작품을 받기로 계약했다.

출품 이전 호닝은 캔버스에 실제 지폐를 빼곡히 붙여 두 나라 국민의 소득을 비교하는 작품을 출품할 계획이라고 알렸으며, 미술관 측도 이에 동의했다. 실제 지폐가 들어가는 만큼 작품 제작비로만 53만 4000크로네(한화 약 9880만 원)가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호닝이 보낸 완성품은 돈을 붙였다 뗀 흔적만 남은 빈 캔버스 2점이었다. 그가 보낸 작품의 제목은 ‘돈을 갖고 튀어라’였다.

호닝은 새로운 개념예술품을 창조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미술관은 좋은 예술 작품임은 인정하나 호닝의 행위는 ‘명백한 착복’이라고 반발했다. 미술관 측은 일단 호닝의 작품을 전시하기로 결정은 했지만, 내년 1월 전시회 종료 전까지 작품 제작비를 반환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라세 안데르센 미술관 관장은 “호닝은 본질적으로 전시 주제와 맞는 작품을 선보였다”면서도 “우리는 부유한 미술관이 아니다”라며 제작비 반환을 요구했다.

호닝은 “내가 그들의 돈을 가져간 것이 작업”이라며 “계약 위반을 한 것은 맞지만 이조차도 작품의 일부”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미술관 측으로부터 적은 제작비용을 받은 뒤 기획하게 됐다”며 “계획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2만 5000크로네(약 343만 원)를 사비로 부담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캄파니아 주 살레르에 새로 설치된 '사프리의 이삭 줍는 사람' 여성 동상 (Rossella Muroni 트위터 캡처)

이탈리아 애국 동상 두고 ‘성차별적’ vs ‘인체의 아름다움 표현’ 논란

이탈리아에서도 예술작품을 두고 낯 뜨거운 논쟁이 발생했다. 지난 25일 이탈리아 캄파니아 주 살레르노에 설치된 여성 동상이 공개된 직후 성차별적이라며 일부 정치권과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은 것이다.

해당 동상은 19세기 이탈리아 시인 루이지 메르칸티니가 쓴 ‘사프리의 이삭 줍는 사람’에 등장한 여성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시 속에서 해당 여성은 왕국에 반기를 들고 원정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사회주의자 300명을 애도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 때문에 노래 부르는 여성은 이탈리아의 애국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날 공개된 여성의 동상은 딱 붙은 옷을 입어 몸매가 훤하게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해당 동상을 두고 이탈리아 민주당 소속 로라 볼드리니 의원은 “여성과 역사에 대한 모욕”이라며 “남성 우월주의는 이탈리아의 악폐”라고 강한 비판을 가했다. 같은 당 모니카 시린나 상원의원을 비롯해 여성 정치인 단체들은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논란에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아메누엘레 스티파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나는 단지 인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이 작품을 ‘타락’으로 보길 원하는 이들에게 내 작업물을 설명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7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그려진 서점 외벽에서 서점 관계자가 벽화 속 문구를 지우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부인 비하 벽화 ‘쥴리’로 국내서도 공론화된 표현의 자유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가 어느 선까지 보장이 되고 어느 선에서 제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은 국내에서도 꾸준히 일어났다. 가장 최근에는 서울 한 중고 서점 외벽에 그려진 ‘쥴리’ 벽화를 놓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이 담긴 벽화는 공개 직후 표현의 자유로 볼 것이냐는 논쟁에 휘말렸다. 보수단체에서 동원한 트럭이 벽화를 가리는 등 격렬한 반응에 건물주는 벽화 일부를 지운 뒤 “맘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라”며 개방했으나 소란이 계속되자 벽화를 지우기에 이르렀다.

정치권에서도 “표현의 수위가 도를 넘었다”는 등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윤석열 캠프 측은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풍자 누드화 ‘더러운 잠’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았으니 해당 벽화로 법적 조처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쥐그림'이 새겨진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홍보포스터 (연합뉴스)

예술 표현의 자유 무작정 보장되지는 않아

‘표현과 예술의 자유’가 완전무결한 권리는 아니다. 2010년 서울 G20 회의 홍보물에 쥐 그림을 그려 넣은 뒤 형사 기소된 박 모 씨와 최 모 씨는 해당 그림이 예술 표현인 그래피티로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재판부는 “G20을 홍보하고 안내하는 공공물건인 포스터의 재물적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홍보 가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가치 훼손이 적다고 볼수 없다”는 등 3심에 이르기까지 피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해외 사례에서도 그래피티 작품이 다른 사람이 만든 표현물이나 창작품에 그려 넣지는 않는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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