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살고 싶다” 절규…조수석에서 바라본 자영업자 차량시위

입력 2021-09-09 12:55수정 2021-09-0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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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 동행 취재…SOS 신호 맞춰 경적 울려

▲8일 오후 11시쯤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이진효(35)씨가 전국동시차량시위에 합류했다. (심민규 기자 wildboar@)

8일 밤 9시 영업종료 1시간을 남겨둔 이진효(35) 사장은 매장문을 일찍 닫았다.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그가 자영업자 차량시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자영업자가 살겠다는 마지막 절규를 보여주기 위해 시위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고 많이 지쳐 보였다.

이 사장은 차량 운전대를 잡았다. 그와 함께 탄 차량은 렌터카였다. 보험금과 유지비조차 내기 힘들어 최근에 자가용을 처분했다고 말했다. 렌터카까지 이용해 경기 의정부에서 서울 여의도를 향한 이유는 명확했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 정부의 자영업자 방역지침 때문이다.

이 사장과 같은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방역지침에 반발하며 전국적인 차량시위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도권 외에도 부산과 전북, 전남, 경남, 충북 등 지역에서도 같은 시간 동시다발적으로 차량 행진이 이어졌다. 차량시위를 주체한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지침 전환을 요구했다.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에 반발, 전국동시차량시위에서 경찰관들이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심민규 기자 wildboar@)

전주 출신인 이 사장은 2019년 5월부터 PC방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빚을 지고 PC방을 인수한 그는 가게 운영 절반 이상을 코로나19와 함께 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방역지침으로 매출은 날이 갈수록 급감했고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현재 그의 매장은 110개의 좌석 모두 꽉 찬 과거와는 다르게 피크타임에도 30석을 채우기 힘든 상황이다. 이 사장은 “PC방이란 업종 자체가 오후 8시부터 새벽 3시가 피크타임이고 이 시간에 하루 매출의 70%가 나온다”라며 “10시에 매장문을 닫아야 하니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이는 통계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7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시행 전후 일주일간 서울시 자영업자의 야간 매출은 2019년 대비 약 40% 감소했다.

그와 시위 현장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그는 한강 변에 도착하자 길을 헤맸다. 비대위가 밤 11시부터 양화대교를 시작으로 한남대교를 거쳐 여의도를 향했지만, 그는 강변북로에 합류하지 못하고 여러 대교를 건너기를 반복했다.

이 사장은 “다른 지역처럼 시청과 도청 앞 대로변에서 시위가 진행되는 게 아니어서 움직이는 시위 차량을 잡기 힘들다”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밤 11시 45분, 시위 차량 후미를 발견하고 그는 결국 합류했다.

▲9일 오전 1시 10분쯤 서울교에서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이진효(35)씨가 전국동시차량시위 참여해 SOS 신호로 경적을 울리고 있다. (심민규 기자 wildboar@)

“빵빵빵 빵~빵~빵~ 빵빵빵!!” 자정 무렵 한강대교 위를 건너는 차량 모두 비대위 측에서 요청한 SOS 신호로 경적을 울렸다. 이 사장도 힘차게 클랙슨을 눌렀다.

비대위 측에서 진행한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 금리 인상과 대출만기 소식을 듣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장은 “얼마 전 주변 PC방 경쟁 업체 사장들도 가게를 접고 매물을 내놨다”며 “많이 폐업하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업종마다 영업시간이 다 다른데 어떻게 다 획일적으로 통제하냐”며 “거리두기로 확진자가 줄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영업자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의도로 집결하는 과정에서 경찰과의 마찰도 있었다. 시위 차량은 여의도 방면으로 직진하지 못한다는 경찰의 통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이 검문 온 경찰관에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자, 직진 길이 열렸다.

새벽 1시, 서울교로 자영업자 차량이 집결했다. 서울교 양방향 모두 꽉 채운 차들은 다시 한번 더 SOS 신호 경적을 울렸다.

새벽 1시 30분, 시위를 마무리하기 위해 차들은 국회둔치주차장으로 모였다. 하지만 경찰의 통제로 주차장 출구는 열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들과 경찰과의 마찰이 있었다. 주차장을 열어준다는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오갔기 때문이다.

관할 경찰서 경비과장은 “여러분의 행위로 인해 집단적인 감염확산 등으로 공공안전과 질서에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정당한 주장을 하시더라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달라”고 해산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한 시간가량 이어진 대치 상황에서 비대위는 국회 정문 앞 방향으로 차량을 돌렸다. 마지막 SOS 신호 경적으로 차량시위는 새벽 2시 45분 마무리됐다.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자영업자들이 비상등을 켜고 규제 중심의 정부 방역 정책에 반대하는 차량시위를 벌이고 있다. (심민규 기자 wildboar@)

이날 시위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은 각기 달랐지만 슬픔은 동일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정 모 씨는 “우리는 한 가정의 가장이어서 지켜야 할 일들이 있고, 많이 속상해서 나왔던 건데 끝까지 속상하다”며 “언젠가는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호프바를 운영하는 백 모 씨는 “매출이 90%나 감소하고 코로나 시작부터 지금까지 약 8000만 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이번 시위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닌 거 같아 아쉽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진효 사장과 다시 의정부에 도착하자 새벽 4시 30분이 됐다. 약 7시간가량 차량시위에 임한 그는 새벽 5시 PC방 오픈을 위해 다시 매장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은 쓸쓸함이 가득했지만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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