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아날로그의 반대가 디지털?

입력 2021-09-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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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현 퍼셉션 대표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展 ‘Dreaming of Hockney’에 다녀왔다. 80세가 훌쩍 넘은 작가는 기존의 드로잉 방식 뿐 아니라 아이패드와 뉴미디어를 활용한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디지털 아트인가, 출력 후 액자에 넣었으니 아날로그인가.

요즘은 업종을 막론하고 어떤 프로젝트에서든 ‘디지털’을 피할 수 없다. ‘왜 디지털이고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을 반복하다 보니 이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최근 모 기업과 신사업 아이디어 발굴 워크숍을 진행하며 세대별로 팀을 구성했다. 시니어 그룹의 아이디어에는 메타버스며 최신 기술 트렌드가 여럿 등장했는데 Z세대 팀에는 그렇다 할 기술이나 디지털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디지털 네이티브들만 모였는데 어찌 가상현실 같은 아이디어가 없느냐는 질문에 “메타버스든 AR(증강현실)이든 결국 뭘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하면 되죠. 그건 툴이지 목표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모두는 ‘진정 내추럴 디지털 네이티브란 이런 것이군’이라는 깨달음을 만났다.

주변을 보면 디지털 피로감을 호소하며 ‘인간미 없고 효율성만 추구하는 것’, ‘그럼에도 잘 모르면 스트레스 받고 말만 들어도 현기증 나는 것’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피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친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덜 고민하게 된다. 대개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면 디지털, 노트와 펜을 들고 있으면 아날로그라 하는 1차원적인 해석에 머무르기도 한다.

‘모든 데이터는 0과 1로 구성되어 있고 무한한 확장과 응용이 가능하다’라는 디지털의 기본적인 속성을 보자. 사람들이 원하는 어떤 문제 해결이나 경험의 차원에서 ‘개인화’ 및 ‘연결과 확장’에 대한 욕구가 점차 강해지는 현실에 ‘디지털’이 아니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 적정 솔루션을 만드는 데 방대한 누적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양하게 응용해 지속가능한 진화를 꿈꾼다면 이를 위한 합리적 방법은 ‘디지털 어프로치’일 것이다. 디지털은 ‘관점’일수도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공간에 방문하기 전 내 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현장에서는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하고 최적화된 몰입된 경험을 했다면 이것은 디지털 경험인가 아닌가. LED(발광다이오드) 패널과 미래적인 인터페이스가 압도적인 공간에서 업데이트되지 않은 콘텐츠를 매번 똑같이 만난다면 이것은 디지털인가 아닌가.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을 대는 것만으로 디지털 경험이 될 수 없다. 화면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세계로 연결해 주고 사용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번거롭고 장황하지 않게 가장 최적의 루트로 안내하는 것, 바로 ‘심플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디지털이다. 여기에서 ‘심플’은 단지 표면의 스타일이 아니라 사용자와 대상 간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의미한다.

이런 차원에서 전시 방식이 꽤 아날로그적이었지만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구성요소들을 콘텐츠 몰입의 시작점으로 만들어 무한한 상상이 가능하도록 했던 ‘Future Food Expo 2050’(2019, 암스테르담)의 사례가 생각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은 툴만 달라졌을 뿐 작품에 담겨진 이야기와 유쾌하고 즐거운 톤은 그대로 살아 있었고, 그에게 디지털은 더 적극적인 창작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이자 전통적인 회화 거장이 갖는 통념적 이미지에 도전하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결국, 어떤 일의 목적과 목표에 따라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가 중요하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대척점에 놓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인다. 지금 주변을 휙 둘러보고 ‘디지털’이라는 도깨비방망이를 아주 작은 변화를 위해 사용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일상의 변화에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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