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발 없는 '8·4 공급 대책' 1년… 집값 불안만 키웠다

입력 2021-08-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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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골프장 등 신규택지 개발계획, 주민 등 반대로 '지지부진'
1년 전 대규모 공급 대책 나왔지만 '반짝 효과' 그쳐
집값 상승폭 되레 더 커져
"급조한 헛발질 공급 대책이 집값 불안 더 부추겨"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스카이31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 및 다세대 주택 전경. (뉴시스)

문재인 정부의 첫 대규모 공급 대책인 8·4대책이 발표된 지 1년이 다가왔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쳐 아예 개발 계획이 무산되거나 아직까지 한 걸음도 못 뗀채 멈춰선 곳이 적지 않다.

시장에선 정부가 주택시장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급조한 헛발질 공급 정책이 집값 상승을 더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규모 공급 대책에도 전국 아파트값은 급등

문재인 정부는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출범 초기부터 지난해 여름 때까지 수요 억제에 방점을 둔 각종 규제 정책을 폈다. 하지만 주택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계속 들썩인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자 급하게 대책을 내놓은 것이 8·4 공급 대책이다. 정부는 8·4 대책에서 서울권 신규 택지 발굴을 통해 3만3000가구, 공공재건축 방식 도입으로 5만 가구 등 2028년까지 총 13만2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대규모 공급 대책이 시장에 집값 안정 효과를 준 것은 석 달에 불과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월간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8·4 대책 발표 직후인 작년 8월 전국 아파트값은 0.65% 올라 전월(0.89%)보다 상승폭이 크게 줄었다. 다만 상승폭이 줄어든 것은 작년 9월 0.57%와 10월 0.40%까지로 그쳤다. 그해 11월 0.75%, 12월 1.34%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8·4 대책 효과는 끝나는 듯했다.

이에 정부는 올해 2·4대책을 통해 공공 주도의 대규모 공급 계획을 추가로 내놓며 집값 안정을 꾀했다. 실제로 올해 3월 전국 아파트값 변동률은 1.07%, 4월 1.01%, 5월 0.98%로 상승세가 꺾였지만, 다시 6월 들어 1.17%로 치솟아 정부의 공급 대책을 무색케 하고 있다.

지자체·주민 반대 벽에 막힌 공급대책…신규택지 개발 진척 없어

정부는 8·4 대책을 통해 대규모의 신규 주택 공급 계획을 내놨지만 구체적으로 사업이 확정된 곳은 전무하다. 신규 택지 후보지 모두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대에 막혀 있어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애초에 정부가 각 지자체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계획을 내놓다 보니 1년이 지나도록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에 막혀 정책에 아무런 진척이 없다"고 말했다.

8·4 대책을 통해 발표된 신규 택지와 공급 물량은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CC) 부지 1만 가구 △서울 용산구 용산캠프킴 부지 3100가구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부지 4000가구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부지 1000가구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유휴 부지 600가구 △서울 마포구 상암DMC 미매각 부지 2000가구 △서울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 부지 3500가구 등이다.

하지만 현재 사업에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지난 6월에는 정부과천청사 부지에 대한 주택 공급 계획이 아예 백지화됐다. 과천시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하자 이를 없던 일로 한 것이다. 대신 정부는 인근 과천지구 등에서 자족용지를 주택용지로 용도 전환해 3000가구를 공급하고, 대체지에 1300가구를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정부과천청사 부지 공급 계획 백지화 소식은 다른 후보지역으로 불똥이 튀었다. 이미 오승록 노원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추진하던 노원구 주민들은 태릉CC 개발 반대 목소리를 더 높였다. 정족수 미달로 오 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은 무산됐지만, 노원구 주민들로 구성된 '초록태릉을지키는시민들'(초태시)은 여전히 태릉CC 개발 반대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초태시 관계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궐선거 당시 태릉CC 개발에 대한 반대 공약을 내세운 만큼 이를 이행하라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며 "재건축·재개발 규제는 강화해 주택 공급을 제한하면서 왜 그린벨트마저 해제하며 개발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노원구 역시 정부의 주택 공급 계획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은 않겠다는 입장이다. 노원구 관계자는 "우리도 국토부에 태릉CC 부지에 계획된 주택 공급 가구 수를 5000가구로 줄이고 부지 절반 규모를 대규모 공원으로 조성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라며 "이를 관철하기 위해 지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서울지방조달청 부지나 서부면허시험장 부지, 용산 캠프킴 부지 개발 역시 지자체와 주민 반대에 부딪쳐 속도를 못내고 있다.

공공재건축 사업도 일부 후보지의 경우 제동이 걸렸다. 정부는 4월 영등포구 신길13구역과 중랑구 망우1구역, 관악구 미성건영아파트, 용산구 강변강서아파트, 광진구 중곡아파트 등 공공재건축 후보지 5곳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미성건영아파트는 계획보다 용적률이 나오지 않아 사업성이 없다며 공공재건축 사업을 철회하고 민간 재건축으로 돌아섰다. 후보지의 전체 물량도 1537가구에 그쳐 정부가 목표치로 내세운 5만 가구의 3% 수준에 불과하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도 정부는 13만6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확보한 물량이 전혀 없는 상태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제공=국토교통부)

"집값 안정화 위해 주택 공급 시그널 전달하는 것이 최선"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주택 공급 최우선"을 외치며 신규 택지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모든 정책 역량을 투입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부동산시장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8월까지 정부과천청사 대체지와 태릉CC 부지 등을 개발해 주택 공급을 추진하는 방안을 확정해 발표할 것"이라며 "연내 지구지정 등 인허가 절차에 신속히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로선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입장이다. 수요 억제책만 고집하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결국 부동산시장 안정 대책으로 꺼내든 카드가 공급 대책인데, 이마저 제동이 걸리면 집값 안정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급 계획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8·4대책 실적 부진은 정부가 물량전과 속도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전체적인 의견 수렴이나 절차 없이 계획을 발표하면서 빚어진 결과"라며 "설익은 대책이 오히려 불안 심리를 부추겨 지금의 집값 상승 원인이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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