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다리다 지쳤어요

입력 2021-07-1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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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지치기 마련이다. 5세대(G) 이동통신 도입을 고대하는 이용자들 이야기다.

“롱텀에볼루션(LTE)보다 20배 빠르다”, “초연결 시대가 열린다”는 말을 믿고 5G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길 기다리며 5G 회선을 사용하는 이들이 5월 말 기준으로 1580만 명에 달한다.

기자도 이 중 한 명이다. 5G 전용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고 5G 요금제도 2년 가까이 사용 중이다. 하지만 정작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면 5G 마크 대신 LTE 마크만 떠 있다. 5G 모드를 꺼 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렇게 답한다. 휴대폰을 바꾸고 6개월 동안 5G 모드를 켜 뒀었다고. 그런데 속도보다 배터리 소모가 심해 결국 꺼 버렸다고.

5G의 품질과 실효성에 대한 문제는 도입 초기부터 끝없이 제기되고 있다. 2018년 4월부터 5G가 상용화됐다고 하는데도 도심 곳곳에서 5G 서비스가 멈춘다. ‘진짜 5G’인 28㎓ 대역 5G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소비자가 이용하는 건 3.5㎓ 영역이다. 그렇다고 28㎓ 기지국 숫자가 빠르게 늘어난 것도 아니다. 3월 기준으로 100곳이 채 안 된다는데, 정부에 따르면 6월 통계가 없다.

5G를 버리고 LTE 등 4G로 돌아가는 이용자가 늘어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달 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5월 기술방식별 회선 현황 통계를 놓고 이런 해석이 나왔다. 분류 기준이 바뀌며 숫자가 조정된 영향이었지만 일각에선 “오죽했으면”이란 이야기가 들렸다.

기다리다 지친 5G 이용자들은 이동통신 3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 소송 전체 참여자만 1000여 명에 달한다. 지난주엔 SK텔레콤을 상대로 첫 번째 변론기일이 열렸고 KT와 LG유플러스에 대한 소송이 예고돼 있다. 이통 3사 대표 세 사람을 피고로 한 소장도 접수됐다.

기다림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온다는 믿음이 있을 때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등장한 사막여우가 대표적이다. 어린왕자에게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고 말했다. 사막여우가 행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어린왕자가 온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진짜 5G’ 기지국을 늘리겠다고 외치기만 하고, 이통사는 ‘탈 통신’을 꿈꾸고 있다. 20배 빨라질 거라는 소비자의 믿음에 통신사는 언제쯤 빚을 갚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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