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박은석 "가장 가까운 사이, 가장 '완벽한 타인'일 수도"

입력 2021-07-1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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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게임 반대…페페 역 임철수와 호흡, 깊은 감정 느껴"

▲연극 '완벽한 타인'에서 로코 역으로 분하고 있는 배우 박은석. (사진=쇼노트)

※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합니다.

한 손에 잡히는 작디작은 물체인데 영향력은 가히 폭발적이다. 한순간에 관계를 산산조각낼 수도, 이해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자발적 혹은 강제적으로 커밍아웃하게 하거나 닫혀있던 사람들 간 대화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연극 '완벽한 타인'은 현대인에게 '판도라의 상자'로 인식되는 휴대전화로 촉발되는 인간관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에서 극 중 성형외과 의사 로코 역을 맡은 배우 박은석을 만났다.

"작가의 발상과 아이디어가 매력적인 작품이에요. 어릴 때 했던 진실게임을 휴대전화로 하다니 상상도 못 했던 일이거든요. 이 게임을 통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어찌 보면 가장 완벽한 타인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작품은 이탈리아 출신 파올로 제노베제 감독의 동명의 영화(2016)를 원작으로 한다. 휴대전화를 공유하면서 그동안 감춰왔던 비밀이 하나 둘 드러나고 그 안에서 인간의 내면과 욕망을 파헤친다. 어린 시절부터 모르는 것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오랜 친구들과 그의 연인 혹은 부부 7명이 게임의 주인공이 된다.

▲'완벽한 타인' 무대. (사진=쇼노트)

"대본의 지문이 꽤 상세했어요. 영화는 인물을 클로즈업하고 리액션을 따는 형식인데, 대본 자체가 영화 대본의 느낌이 강했어요. 배우들도 대본을 읽으며 영화적 상상을 하게 됐죠."

'완벽한 타인'은 2018년 한국에서 영화로 리메이크돼 5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극 '완벽한 타인'은 이탈리아 원작에 더 가깝다. 배역 이름이 에바·로코, 비앙카·코지모, 까롤로타·렐레 부부, 페페 등 이탈리아식인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테이블을 중심으로 한 무대 세팅은 영화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대 위엔 긴 테이블이 전면에 놓이는데, '최후의 만찬'을 연상케 한다. 대사에서도 나온다. 박은석은 일자형 테이블로 무대가 꾸며진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이 연극만의 특징이기도 해요. 영화에선 원형 혹은 사각형 테이블에 서로 둘러앉아 대화를 하는데, 저희는 샷 안에 모두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어서 창작 팀의 고민이 있었어요. 결론적으로 테이블을 통유리창 밖의 월식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로 정리된 거죠. 수미쌍관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최후의 만찬'이 될 수 있는 거니까요. 부엌과 화장실, 테라스도 영리하게 구분됐고요. 무대 설정이 정말 좋아요."

극 초반, 페페의 애인이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로코가 8개의 의자 중 하나를 빼 정리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때 페페와 친구 까롤로타의 의자 사이에 공백이 채워지지 않아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완벽한 타인' 에바 역의 장희진과 로코 역의 박은석. (사진=쇼노트)

"의도한 거예요. 페페는 친구들과 공간적으로 떨어지도록 구성한 거죠. 연출님은 루칠라 자리가 빠지고 페페 자리가 멀어지게 된 게 오히려 페페 캐릭터가 두드러지고 구도상의 매력이 있는 거 같다고 하셨죠. 저희 모두 동의했던 부분이에요."

익히 알고 있는 명작이기 때문에 극의 흐름을 알고 연극을 관람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결말을 알고 봐도 재밌다. 7명의 배우가 110분간 쉴 틈 없이 대사와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다가 어느새 그 안에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

"민준호 연출님이 이 극엔 메시지나 교훈이 담겨 있지 않고, 재미로 봐달라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오히려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적인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가깝다는 핑계로 상대방에게 폭력적일 때도 있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버릴 때가 있어요. 저는 이 배려 없는 폭력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배우들의 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지속하면서 집들이, 파티 등의 단어가 생소해진 지금 7명의 친구가 한 공간에 모인다는 설정마저 반갑게 느껴진다. 박은석은 실제로 '완벽한 타인' 대기실은 그 어느 작품보다 화기애애하다고 했다. 배역이 어떻게 섞여도 서로 재밌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완벽하다는 전언이다.

"연기할 때 재밌고 좋은 아이디어가 정말 많이 나와요. 또 연령대가 있는 배우들이 모이다 보니 연습실엔 항상 건강 음식이 넘쳐나죠. 참, 견주들도 많아요. 애견용품, 강아지에게 좋은 간식들도 왔다 갔다 하죠. 학부형들 같기도 해요. 가정적인 분위기랍니다. 하하."

10년 넘게 함께 살았던 임철수와의 공연도 반갑다. 박은석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일"이라며 "워낙 잘 알고 있는 사이여서 무대 위에서 철수가 뭘 하든 상관없을 정도로 편한 마음"이라고 했다.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사진=쇼노트)

"철수 배우랑 안 지 벌써 11년이 넘었어요. 11년 동안 4번밖에 함께하지 못했네요. 참 소중한 친구예요. 극 중 페페가 사실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했을 때 충격과 미안함 등 여러 감정을 느껴요. 그런데 철수랑 공연을 하다 보면 '정말 철수가 무언가를 나한테 고백한다면?'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로코와 페페로서 관계보다 박은석과 임철수의 관계가 돼버리는 거죠. 그런데 작품하고도 비슷해요. 오랫동안 함께해온 친구니까요. 사뭇 남다릅니다.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혼재돼서 훅 깊이 들어올 때가 있어요. 정서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있죠."

박은석은 평소 휴대전화를 집에 놓고 나와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스타일이다. 스스로 '기계치'라고 말하며, 사진도 잘 찍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아이폰 화면 녹화 기능도 최근에 알았을 정도. 그런 박은석도 휴대전화 게임을 참여할 자신이 있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휴, 굳이 하고 싶지 않아요. 관계적으로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또 괜히 오해할 여지도 생길 거 같아요. 굳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비밀은 언젠가 드러나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자신 있지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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