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국민 98% 찬성에도...수술실 CCTV 아직도 설치 안된 이유?

입력 2021-06-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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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대다수가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반대가 거센 데다가 몇몇 쟁점을 두고 의원들 간 의견이 엇갈려 입법이 늦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하자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1만39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98%가 "병원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한데 이런 압도적인 찬성 여론에도 국회 입법은 지지부진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3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수술실 CCTV 설치 등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심사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CCTV 설치 위치와 의무화 여부 등 여러 쟁점이 발목을 잡았다. 민주당은 당초 6월 정기 국회 내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개정안이 이달 안에 국회 문턱을 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수술실 앞"vs"내부"…CCTV, 어디에 설치해야 할까?

▲수술실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 관련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린 지난달 26일 이나금 환자권익연구소장(왼쪽부터), 오주형 대한병원협회 협력위원장,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가 참석해 진술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은 CCTV를 수술실 내부에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은 수술실 입구에 설치하자고 주장한다.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법안소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수술실 내부에 설치할 것인지 다른 위치에 설치할 것인지, 설치를 의무화할 것인지가 쟁점"이라고 말했다.

복지위 제1 법안심사소위원장인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 역시 "수술실 CCTV 설치를 야당이 절대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대리수술이나 성범죄 불법의료행위 근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부가 좋을까, 내부가 좋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내부 설치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CCTV가 없으면 수술실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어려워 내부 설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반대 측은 개인정보 유출 우려와 비용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 동의받게"vs"환자 또는 보호자의 동의만"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의료사고 피해자 故(고) 권대희씨 유가족인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촬영 시 환자 또는 보호자의 동의만 받을 것인지 의료진의 동의도 받을 것인지 여부도 쟁점이다. 의료계의 반대가 극심해 정부가 CCTV 촬영을 위해 의료진의 동의를 받자는 절충안을 내놓았는데, 이에 대해 의원들 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를 비롯해 CCTV 설치를 촉구하는 측은 의료진 동의가 CCTV 촬영의 필수 조건이 된다면 법안이 유명무실화될 거라 말한다. 법안이 통과돼도 무자격자의 대리 수술 등을 막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대리 수술 비율이 0.001%가 안 된다며, 오히려 CCTV가 수술실에서 선량한 의료진의 의료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외과·흉부외과·응급의학과·산부인과 등 수술이 절대적인 필수과의 기피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일부 의료인들에 의한 비윤리적 의료행위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한다면 선량한 의사들의 의료 행위를 위축시킨다”고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사생활 유출 우려…개인 정보 관리는 어떻게?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위한 의료피해 당사자 간담회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

사생활 유출 방지 및 개인 정보 관리 방법도 쟁점 중 하나다. 의료계는 사생활 유출 우려가 큰 CCTV 대신 수술실 입구에 홍채·지문 인식기를 설치하거나 대리 수술 및 성범죄 등 문제 행위를 한 의사의 면허 박탈 등 처벌을 강화하자고 말한다.

개인 정보를 중시하는 해외에서도 수술실 CCTV가 논의된 바 있지만, 입법되지 않았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유방확대 수술 중 의료 사고로 환자가 사망한 이후 2018년 1월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19일 의협이 공개한 세계의사회(WMA)는 서한에는 CCTV 설치를 반대하는 내용과 함께 "의료행위를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주장이 담기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한국의 유령수술 등 의료범죄 사례가 해외에선 많이 눈에 띄지 않아 우리나라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수술실 내부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아울러 각종 시행령과 세부 지침으로 영상 유출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CCTV 설치 병원 "사생활 유출, 부작용 드러나지 않아"

▲일찍이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한 일부 병원에서는 의료계 전반에서 우려하는 사생활 유출, 의료 분쟁 남발 등의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미 CCTV를 수술실 내부에 설치한 병원에서는 사생활 유출 같은 큰 부작용이 없었고 오히려 환자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대형 사립병원에서는 수술실 내부 CCTV 설치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기도는 2018년 10월 1일부터 2019년 4월 30일까지 경기도의료원 산하 안성병원에 CCTV를 설치했는데, 해당 기간 촬영 영상이 유출되거나 의료계에서 우려했던 의료 분쟁은 없었다.

경기도의료원 정일용 원장은 “1년 반 동안 환자 요구로 전체수술의 66%가 녹화됐지만, 의사들이 우려했던 의료분쟁은 없었다”며 “수술실 CCTV 설치는 선량한 의사가 아닌 범죄를 저지르는 소수 의사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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