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숙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특작환경과 연구원
농가 무상공급ㆍ수입대체 "화훼ㆍ약용작물로 범위 넓혀갈 것"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은 연간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식물 바이러스병 치료 약제는 세계에서도 아직 없어 현재로서는 예방만이 최선의 대책이다.”
식물 바이러스 감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진단키트를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조인숙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특작환경과 연구원이 28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개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조 연구원의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식물 바이러스를 진단할 수 있는 국산 진단키트는 없었다. 해외 제품들이 있었지만 가격이 비싸고, 국내 실정에도 맞지 않았다. 조 연구원은 해외 진단키트의 신속성은 유지하되, 가격을 낮추고 국내 실정에 맞도록 보완했다.
그가 개발한 진단키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임신 진단키트와 비슷하다. 조 연구원은 “바이러스 진단을 위해서는 작물의 잎을 따서 으깬 후 즙을 진단키트에 떨어뜨리기만 하면 된다”며 “진단키트에 한 줄이 나타나면 음성, 두 줄이 나타나면 양성으로, 2분 이내에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98년 수박 농가는 중국에서 들어온 오이녹반모자이크바이러스로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바이러스는 전국으로 퍼져 피해 면적이 463헥타르(㏊)에 이르렀다. 이후 조 박사는 농업 현장에서 바이러스를 바로 진단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2007년부터 14년간 개발한 원예작물 바이러스 진단키트는 10개 작물(작물박·오이·멜론·호박·참외·고추·토마토·가지·상추·배추) 17종의 바이러스를 진단할 수 있다. 정확도는 95% 이상이다.
조 연구원은 “진단키트의 원리는 미세한 나노 크기의 금 입자(직경 40㎚)에 바이러스 특이적 항체를 부착하고 결합반응 원리를 이용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바이러스 진단이 손쉽고 정확해지면서 생리장해 등을 질병으로 잘못 판단해 비료나 농약 등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상황도 줄어들 수 있다”고 부연했다.
농가 보급에도 속도를 냈다. 처음 개발했던 2007년 1080개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전국에 무상으로 보급한 바이러스 진단키트는 17만5836개에 이른다. 올해도 지금까지 1만8000개를 보급했다.
조 연구원은 “올해는 고추에 문제가 되는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 오이모자이크바이러스, 고추모틀바이러스, 고추약한모틀바이러스 등 4종을 한번에 진단할 수 있는 ‘다중진단키트’가 포함돼 있다”며 “지난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 다중진단키트는 단일진단키트를 이용할 때보다 진단 시간을 6분 단축할 수 있고 비용도 17%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번 발생하면 큰 피해로 연결되는 농작물 질병인 만큼 진단키트 보급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도 아주 크다. 매년 피해 절감액은 증가하는 추세로 지난 14년간 피해를 줄인 금액은 약 6570억 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진단키트를 국산화해 수입대체 효과도 발생했다. 조 연구원은 “진단키트 수입 대체 효과는 연간 1억8000만 원에 달한다”며 “평균 1만3000원 정도 하는 외국산 진단키트와 비교해 국산 진단키트는 3000원에 불과해 비용은 77%가량 줄었다”고 얘기했다.
앞으로 목표는 채소에 국한된 바이러스 진단키트 범위를 더욱 넓혀 가는 것. 조 연구원은 “채소는 물론 화훼·약용 작물까지 바이러스 진단 범위를 넓혀 나갈 계획”이라며 “바이러스병 예방은 신속한 진단이 생명인 만큼 좀 더 빠르고 간편한 키트를 지속해서 개발·보급해 농가 피해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