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천연기념물'이 될 거야…도시를 채운 '존재들'

입력 2021-06-17 17:48수정 2021-06-1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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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도시의 불빛 저편에(Beyond the City Lights)' 展

▲엄아롱(왼쪽부터), 장용선, 김혜정, 윤정미, 송주형 작가가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도시의 불빛 저편에 Beyond the City Lights'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금호미술관)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는 오랜 세월 동안 상호의존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전 세계에 전염병이 대유행하면서 물리적 교류가 막혀도 '언택트'를 위시한 다양한 소통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도 어쩌면 우리의 본능이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이민영 큐레이터는 17일 금호미술관에서 진행된 기획전 '도시의 불빛 저편에 Beyond the City Lights' 기자간담회에서 "긴밀하게 연결된 도시 속에서 비인간 생명의 삶은 인간과 필연적으로 맞닿아 있다"며 "'연결'에 대한 사유에 대해 인간의 범주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비인간 존재들까지로 틀을 확장해 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엄아롱 작가의 '이사 그리고 이사'. (사진=금호미술관)

우리가 목격한 광경 너머 '진실'

1층 전시실은 엄아롱 작가의 작업물로 채워졌다. 작가는 빠르게 변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쉽게 버려지거나 잊힌 사물을 수집하여 조각, 설치 작업으로 전환했다.

엄 작가는 "유년 시절 재개발로 인해 잦은 이사를 해야 했던 작가는 '이동'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겨지는 것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작업을 이어 왔다"며 "소중한 것을 폐기해야 하는 고민과 괴로움에 직면하는 순간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직접 찍었거나 온라인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압축한 형태로 대체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드러냈다. 작품의 일부인 시멘트와 철 파이프는 전시 이후 다른 곳에 재사용 될 수 있도록 작업했다. 조각화 된 이미지들은 서식지를 뺏기거나 강제로 이동해야 하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오래된 건물을 표현한 것은 도시의 사회적 현상을 포괄적으로 내포한다.

▲장용선 작가의 '찬란한 잔해'. (사진=금호미술관)

2층 초입에 들어서면 장용선 작가의 작품 '찬란한 잔해'를 볼 수 있다. 작가는 그간 폐 식물이나 동물의 뼛가루 등 인간 활동의 부산물을 재료로 한 설치 작업을 선보여 왔다. 색색의 아크릴 박스는 도심을 빼곡히 채운 수직적 건물을 연상케 한다. 도시의 밤이 화려한 색과 빛을 내뿜듯 그 안에 매달려 있는 버려진 강아지풀 더미가 아름다워 보이는 역설적 장면을 관람객에게 제시한다. 장 작가는 "불이 스스로 발광하면서 소멸하는 과정이 조악해 보이길 바랐다"고 했다.

'Treasure – The Seed Collection'은 우리 주변에 서식하는 이름 모를 들풀의 씨앗을 수집해 종자 병에 담은 작품이다. 도시 경관을 위해 계속해서 제거되는 들풀이 세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 도리어 '잠재적 천연기념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에서 비롯됐다.

▲송주형 작가의 '流(류)'. (사진=금호미술관)

송주형 작가는 영상, 프로젝션 맵핑, 인터랙티브 조명 등의 미디어를 활용해 다양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장 양쪽 벽 전체를 차지하는 두 작품은 초월적 존재인 자연의 형상을 매개로 한다. 물질에 대한 집착과 인간 중심의 한계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로움을 얻길 제안한다.

이상적인 자연의 이미지와 폐비닐을 결합한 작품 '流(류)'는 영상을 반사 또는 투과시킴으로써 현대인이 인식하는 자연관과 여전히 환경을 훼손하는 모순적인 현실을 동시에 드러낸다. '도시 숲'은 조립식 골조와 4개의 영상으로 이루어졌다. 4개의 화면으로 분할된 영상은 조립과 해체가 쉬운 모듈화 된 골조는 현대도시 속 임시적으로 유예된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주거 환경을 상징한다. 문규철 작가의 음악 'Eroded Future'로 완성됐다.

가장 소중한 것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

김혜정 작가는 상처받고 소외된 반려동물 이야기와 훼손된 자연환경 속에서 고통받는 동물을 주제로 한 섬세한 연필 드로잉 작업 20여 점, 그리고 애니메이션 한 편을 전시한다. 김 작가는 "과거 유기견 '자몽이'를 입양하면서부터 동물과 환경에 관한 사유를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혜정 작가의 전시. (사진=금호미술관)

반려동물을 통한 개인적인 경험은 주변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성찰로 확대돼 동물과 관계 맺음이 인간에게만 유리한 상태가 아닌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보여준다. 이종혁 감독과 함께 제작한 애니메이션 '당신이 버린 개에 관한 이야기'는 2013년 제10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관객심사단상을 수상했다.

윤정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반려동물'(2008-15) 연작과 '구(舊) 동물실험실'(2016) 연작을 선보인다. 도시에서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일상의 공간에서 촬영한 '반려동물' 연작은 작가의 반려견 '몽이'에서 시작해 작가의 지인과 그 주변의 사람들까지 대상이 확장됐다. 사람들이 함께 사는 동물은 강아지, 고양이, 친칠라, 이구아나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윤정미 작가의 '구(舊)동물실험실' 시리즈. (사진=금호미술관)

'구(舊) 동물실험실'은 2016년 작가가 참여한 전시 장소 근처 건물들이 과거 동물실험실로 쓰였다는 사실을 듣고 촬영한 것이다. 인간 중심의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윤 작가는 "인간의 편익을 위해 착취된 동물들을 암시하는 이 작업은 '반려동물'의 사진들과 대조되면서 모순적 감정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18일부터 8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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