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안재영, 까라마조프 '이반'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다

입력 2021-05-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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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인터뷰…"이해 안됐던 '헛소리', 작품 사랑받는 이유 돼"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표도르의 둘째 아들 이반 역을 맡아 활약하고 있는 배우 안재영과 최근 서울 대학로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김소희 기자 ksh@)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은 모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안에 있다." 미국의 풍자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는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학로 중심에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재미와 교훈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삼연째 관객을 만나고 있는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이다. 작품은 평생을 방탕하게 살아온 아버지 표도르의 죽음을 중심으로 첫째 아들 드미트리, 둘째 아들 이반, 셋째 아들 알료샤, 사생아 스메르쟈코프의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낸다.

둘째 아들 이반 역을 맡은 배우 안재영을 최근 서울 대학로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이반은 냉철한 지식인이다. 합리론만을 신봉하기 때문에 '신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허용된다'고 말한다. 안재영은 이에 대해 "누구보다 신에 대해 갈구하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이반은 '무신론자'임을 스스로 강조하지만, 신의 유무에 대해 논문을 쓰는 등 그 누구보다 신을 생각하고 계속 들여다본 인물이다. 안재영은 이런 이반의 면모에 주목했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원작 중 대심문관이라는 테마가 강조됐어요. 대심문관이라는 챕터 자체가 실제 소설에서도 중요한 부분이고 신이 이 세상에 행한 일이나 신의 존재 여부 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죠. 그러다 보니 이반이 중심적인 인물이 됐던 것 같아요."

▲배우 안재영. (김소희 기자 ksh@)

안재영은 초연부터 삼연에 이르기까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 출연하고 있다. 이 과정 동안 그의 생각과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안재영은 "지난 1년 동안 피부로 느끼고 귀로 들은 것들이 많아졌다"며 "이반의 생각이나 마음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중"이라고 했다.

다음은 안재영과의 일문일답.

- 초연 이후 재연, 삼연까지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달라진 지점이 있다면.

"저도 나이를 먹다 보니 생각하는 것과 보는 것이 많아졌어요. 시대도 빠르게 변하고 있고요. 세상을 더 자세히 바라보고 관심을 두게 되기도 했죠. 배우라면 그래야겠지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2라는 역병이 전 세계에 돌면서 많은 분이 고통받고 계시잖아요. 집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왜 이런 일이 생긴 건가'라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안재영 자체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이반에 접근할 때도 이렇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왜 신은 사람을 만들어서 좋았다고 해놓고,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라며 이반처럼 접근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보면 이반은 등장인물 모두와 갈등한다. 드미트리와는 약혼녀를 둘러싸고, 알료샤와는 신의 여부를 두고 대립한다. 또 누구보다 차가운 시선으로 신과 아버지를 경멸하지만 결국 가장 천대하던 스메르쟈코프로 인해 무너진다. 캐릭터 설정에 고민되는 지점이 많았을 것 같다.

"저희 작품을 기준에 두고 말씀드리자면,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였던 이유, 어떻게 보면 죽이지 않았을 이유를 이반은 '무신론'과 결합해요. 그 부분이 많이 고민됐어요. 알료샤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수도원에 가서 고통받는데, 이 역시 '무신론'과 결합하죠. 스메르쟈코프가 어린아이같이 보이지만, 순수 악일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마지막엔 '대심문관 I'이라는 넘버를 통해 신과 마주합니다. 그러한 연결 지점을 신경 썼어요."

- 실제 안재영과 이반의 닮은 지점은?

"처음엔 알료샤로 캐스팅될 줄 알았어요. 저와 알료샤가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동안 알료샤와 비슷한 성격의 역할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오세혁 연출님이 '재영아, 너에게 이반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때로는 정 없이 느껴질 정도로 객관적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긴 해요. 감성적일 때도 많지만, 이성적일 때가 생각보다 많은 거죠. 친한 사람들한테 더욱 그러는데, 세혁 연출님하고도 친해지다 보니 '형,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고 많아요. 그런 부분을 캐치한 것 같아요. 제가 냉정해 보이나 봐요." (웃음)

▲배우 안재영. (김소희 기자 ksh@)

- 무대 위 네 명의 형제들은 네 개의 모서리에 각각 위치한다. 자리가 상징하는 바가 있나.

"중앙엔 아버지가 누워있는 관이 있죠. 연출님은 이 공연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표도르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 얼굴에 하얀 가루를 묻히는 것도 제사 의식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고요. 무대 자체가 상징적이에요. 저희 형제들이 있는 공간은 각자의 공간입니다. 스메르쟈코프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있고, 이반은 서재에 있죠. 드미트리는 감옥이고, 알료샤는 고해를 할 수 있는 공간이자, 십자가 하나 놓고 기도하는 수도원의 방일 수도 있어요."

- 다른 작품보다 연출 노트가 길 것 같다.

"방대한 소설을 두 시간으로 축약하다 보니 상징적인 장면이 많아요. 연출님은 명확하게 '이건 이거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캐릭터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느낌만 주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도 주기 위해서고요. 연출님은 배우들이 공부했다는 전제하에 배우가 해석한 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열어주셨어요. 물론 연출님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은 이야기하세요. 하지만 80%가 칭찬이에요. 저는 칭찬 받으면 더 좋아하는 스타일이긴 해요. 지적받는다고 움츠러드는 스타일도 아니지만요."

- 체력 소모가 극심한 작품인 것 같다.

"하고 나면 '멍'해져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돌아요. 나쁘게 얘기하면 후유증일 수도 있어요. 공연에 대한 잔상이 지진의 여진처럼 계속 있어요. 그걸 계속 가져가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떨쳐내기 위해 게임이나 운동을 해요. 몰입해서 나오는 효과도 분명히 있긴 해요. 다만 다른 작품보다 되뇌어지는 게 많은 작품인 건 확실해요."

-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희 작품은 시행착오도 정말 많이 겪었던 작품이에요. 소리 지르고 무언갈 던지고 피가 흐르는 걸 보기 불편해하는 관객도 계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그 순간 살아있음을 느낄 요소도 많은 작품이에요. 보면서 해소되는 측면도 많으실 거예요. 분출하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에요."

▲배우 안재영. (김소희 기자 ksh@)

- 넘버들도 인기다.

"'헛소리'라는 넘버가 처음 나왔을 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들리지 않았어요. 네 명이 다 다른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정말 전에 없던 합창이어서 다들 '이게 뭐야?'라고 했어요. 그런데 세혁 연출님이 '모르겠는데, 뭔가 이 느낌이 좋다'고 하셨죠. 이후 다른 배우들이 하는 걸 모니터링하는데 뭔지 모르게 좋지만, 이러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젠 '헛소리'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좋아해 주시는 이유가 돼버린 넘버예요."

- 유튜브에 '헛소리'를 부르는 영상을 올렸다. 네 명의 배우의 몫을 혼자 소화하는 색다른 시도를 했는데 반응이 좋다. 또 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

"브이로그는 부끄러워서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카메라 보고 혼자 '안녕하세요'라고 하다니. 전 못할 것 같아요. (웃음) 저는 단순히 유튜브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했던 작품이나 좋아하는 작품의 넘버를 커버해서 올리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재밌는 놀이 프로젝트'라고 부르는데, 즐겁게 하고 있어요. 그 누구도 불행하고 피곤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밌는 놀이를 계속하려 해요. 기대해주세요."

- 최근 '난설', '전설의 리틀 농구단', '미스트', '무인도 탈출기' 등 많은 작품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석구라는 역할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실제로 최근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 휴대전화 용량이 512GB인데, 2013년 때부터 연동돼서 그때의 사진과 영상들이 뜨는 거예요. 김종구 형, 박해수 형, 주민진 형, 최성원 형, 강정우 형, 이지숙 누나, 박정원 형, 진선규 형 등 제가 두 시즌 하면서 만났던 멤버들 모두 다시 만나서 같이 하고 싶어요. 정말 순수하게 재밌게 했던 생각이 나요."

▲배우 안재영. (김소희 기자 k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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