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반도체 산업 전문가 100명 설문조사…"과감한 세제 지원 필요"
국내 반도체 전문가들이 한국의 ‘인공지능(AI)’ 및 ‘차량용’ 반도체 설계 분야 경쟁력을 선진국의 60%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와 함께 반도체 산업 전문가 100명(학계 60명, 산업계 4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6일 공개했다.
주요 반도체 기술과 밸류체인 분야별로 최고의 선도 국가(기업)의 수준을 100으로 두고 한국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인공지능 반도체 소프트웨어(56)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56) △차량용 반도체 설계(59) 부문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로 꼽히는 분야가 가장 낮았다.
△장비(60) △부품(63) △소재(65) 등 반도체 후방산업으로 반도체 생산성과 품질을 좌우하는 요소들의 기술 수준도 낮게 평가했다.
메모리ㆍ시스템ㆍ인공지능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공정’보다 ‘설계’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진단했다.
기술 경쟁력이 낮은 분야일수록 인력도 더 부족한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 현장의 전문 인력 수요(100) 대비 국내 수급 현황에 대한 질문에는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55) △차량용 반도체 설계(55) △인공지능 반도체 소프트웨어(56) 부문의 인력난이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의 주력 분야인 메모리반도체의 설계(75)와 공정(84) 인력도 현장 수요보다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경련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시스템반도체 사업 부문은 주로 IT(정보기술)용 반도체에 중점을 두고 있어 인공지능 및 차량용 반도체 분야는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다"면서도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급진전할 기술 분야에 대한 경쟁력 확보와 시스템반도체 육성 차원에서 반드시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중에 미국ㆍ중국ㆍ대만ㆍEU(유럽연합)ㆍ일본 등 각 주요국(지역)의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와 육성 움직임이 우리 기업들에 부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 주도의 반도체 집중 투자와 추격에 대해 ‘매우 부정적(30.0%)’ 또는 ‘약간 부정적(55.0%)’으로 보는 의견이 우세했다.
대만 기업들의 파운드리 사업 대규모 투자와 정부의 지원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25.0%)’이거나 ‘약간 부정적(60.0%)’이라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이에 반해 미국 정부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위한 지원에 대해서는 부정적(55.0%)인 시각 외에도 긍정적(39.0%)으로 보는 의견도 많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으로는 ‘반도체 고급 기술 인력 수급 및 양성 시스템 부족(14.0%)’이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주요국의 자국 우선주의 심화로 인한 글로벌 밸류체인 불안정(13.5%) △국내 반도체 소재ㆍ부품ㆍ장비의 글로벌 경쟁력 미비(12.3%)도 우려된다고 꼽았다.
최근 정부와 국회 등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반도체 산업 발전법안 마련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전문가들은 ‘기업의 생산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과감한 세제 지원(23.0%)’을 가장 우선으로 정책에 포함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반도체 소재ㆍ부품ㆍ장비 국산화 및 테스트베드 확대(18.7%) △중장기 인력 양성 계획(15.7%) △R&D 부문의 주 52시간 근무제 유연성 강화(9.3%) △건설ㆍ환경ㆍ안전(중대재해기업처벌법, 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등록ㆍ평가법) 인허가 패스트트랙(8.7%) 등의 반영도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세계 각국의 자국 반도체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부 주도의 지원에 대응해 우리나라 정부도 ‘반도체 산업발전법’을 발의하고, 중장기적으로 국내 반도체 소자ㆍ설계ㆍ소재ㆍ부품ㆍ장비 등 전 분야에 걸쳐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미국 정부와 같은 수준의 생산시설 투자 인센티브 지급, 환경ㆍ안전ㆍ건설의 인허가 패스트트랙 운영, 전기ㆍ용수ㆍ폐수 처리의 신속한 인프라 지원, 중대재해기업처벌법ㆍ화관법ㆍ화평법ㆍ근로기준법 등 4대 산업법 규제 완화, 차량용 반도체 신규 팹 설치, 연구개발 및 설계 분야의 우수한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 기술 격차를 벌리고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경쟁 기업을 따라잡는데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데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리스크까지 직면하게 됐다”며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의지를 표명해 다행이지만,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을 강력하게 마련하고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전경련은 △반도체 제조시설 및 R&D 투자에 대해 50%까지 세액공제 확대 △우수한 반도체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반도체 관련 대학 전공 정원 확대 및 장학금 지원 △건설ㆍ환경ㆍ안전 관련 규제 완화와 인프라 구축 행정 지원 등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주요 정책과제의 개선을 건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