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나 드라마에서 시체가 주술을 받고 살아나 사람들을 공격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라 경제와 재계에도 ‘좀비’가 있다. 정부의 지원으로 간신히 명줄을 잇는 벼랑 끝 기업들이다.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한계기업 문제가 한국판 좀비물(2016년 영화 부산행, 드라마 킹덤)보다 무서운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 주요 기업 100개 가운데 18개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었다.
◇코로나 연명 치료 중인 ‘좀비기업’=부실 징후 기업은 줄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채권은행이 3508개 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한 결과 2020년 대기업 4곳, 중소기업 153곳 등 총 157개 기업이 부실징후기업인 것으로 파악됐다. 1년 전과 비교해 대기업은 5곳, 중소기업은 48곳 줄었다. 부실징후 중소기업 수가 줄어든 건 2017년 이후 3년 만이다. 부실징후기업은 외부 자금지원 또는 별도의 차입 없이는 금융기관에 차입금 상환이 어려운 기업이다.
단순 수치만으로 보면 상황은 개선됐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체력이나 상황이 나아진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전방위 금융지원이 숨통을 틔웠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코로나19 관련 금융권 유동성 지원 효과로 기업대출 연체율이 떨어지고 회생 신청 기업 수가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벼랑 끝에 선 기업이 간신히 명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정부가 주도한 금융지원 덕이다. 흔히 기업에 대한 연명치료 덕분이다. 미뤄진 원리금 상황보다 더 큰 문제는 이자 유예 대상 기업 중 상당수가 한계기업이라는 데 있다.
기업의 재무건전성은 이미 빨간불이다. 지난해 부도 위험이 큰 ‘상환위험기업’은 전체 대상기업의 6.9%였으며, 이들 기업이 보유한 금융여신 비중은 전체 대상기업 여신(403조8000억원)의 10.4%인 42조원으로 증가세가 지속됐다. 한은은 “각종 금융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기업 채무상환 능력이 크게 저하됐다”며 “금융지원 조치 정상화 시점에 취약 부문의 신용 위험이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1~2019년 외부감사대상 비금융업종 9만9667개 기업·연도 표본을 대상으로 국내 기업 부문에서 한계기업이 유발하는 혼잡효과를 분석한 결과, 한계상황에 직면한 기업 비중의 증가는 기업부문 전반에 걸쳐 고용과 설비투자를 위축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퍼주기식’ 정책자금 지원이 기업 성장에 미미하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한국개발연구원은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지원 성과가 예상보다 훨씬 부실하다는 내용의 분석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중소기업 과보호로 인해 한계기업 양산, 도덕적 해이 등이 발생했고, 중소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한계기업, 고용·설비투자 위축 =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경제발전학회와 한국금융연구원, 서울사회경제연구소가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공동학술대회에서 “한국은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201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2위일 정도로 낮다”며 “생산성 낮은 좀비기업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특히 생산성이 낮은 자영업자와 서비스업, 정부 지원책으로 연명하는 ‘좀비 중소기업’을 정리하는 한편 기업 규모가 커지면 적용받는 규제로 인해 줄어드는 생산성을 규제 개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연구실장은 “현상 유지만을 목표로 해서는 잠재성장률의 마이너스 추락을 피할 수 없다”며 “2033년이면 마이너스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 실장은 노동·자본·생산성 세 요인이 △현재 추세로 천천히 느려지는 경우 △OECD 기준 상위권으로 개선되는 경우 △현재 추세보다 더 빠르게 나빠지는 경우로 나눠 잠재성장률을 계산했다. 현재 추세대로 천천히 느려지는 경우에는 잠재성장률이 2030년 1%, 2045년에는 0.7% 수준까지 하락한다고 봤다.
셋 모두 악화되는 경우에는 2032년 0%대 잠재성장률을 기록하고 2033년에 -0.1%로 마이너스 성장이 시작된다고 내다봤다. 2045년에는 잠재성장률이 -0.45%까지 추락한다고 전망했다.
박 실장은 특히 고령화에 따른 노동 투입 하락과 경제 규모 성장에 따른 자본 축적 둔화를 지적했다. 그는 “노인이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여 노동 투입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결국 지속할 수 있는 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