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도의 세상 이야기] 대한민국 원전이 사막에 불을 켜다

입력 2021-04-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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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도 서울대 객원교수, 에너지밸리포럼 대표

이달 7일 문재인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제에게 바라카 원전 1호기 상업운전 개시를 축하하는 서한을 보냈다. 상업운전은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UAE의 전력망을 통해 일반에게 공급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드디어 우리나라가 미국, 프랑스, 러시아, 캐나다,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원전을 해외에서 운전하는 국가가 되었다.

한국전력이 2009년 12월 UAE 원자력공사와 한국형 원전인 ‘APR1400’ 노형을 활용한 원전 4기를 공급하기로 계약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공사에 참여하여 가혹한 환경인 중동의 사막에서 원전을 완성하여 가동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바라카 원전 2, 3, 4호기도 1년마다 순차로 상업운전에 들어가게 되어 UAE가 사용하는 전력의 25%를 공급하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해외수주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를 숱한 국내외 난관을 뚫고 완성했다는 측면에서 실로 감회가 새롭다. 수주 당시만 해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에 이를 정도로 에너지 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세계적으로 새로운 원전 건설이 적극 추진되던 시절이었다. 원자력계에서 ‘원전 르네상스’가 온다는 기대까지 있었다. 당시 우리 해외건설 수주금액이 연간 700억 달러를 상회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바라카에서 원전 공사를 막 시작할 무렵인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부 해안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대지진 여파로 생긴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이 침수되고, 외부에서 전력 공급이 중단되자 냉각 기능이 멈추면서 원전이 정상 가동하지 않아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많은 나라들이 원전 건설을 포기하여 세계적으로 원전 사업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날 때 UAE에서 개최된 정상 방문에 참여하고 있었다. UAE는 중동의 산유국이면서도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한 혁신의 일환으로 대규모 원전 사업을 시작한 뜻깊은 시기였으며, 우리는 100만 개가 넘는 부품과 기자재로 이뤄진 가장 복잡한 프로젝트인 원전의 해외수주를 기념하는 착공식을 계획했다. 그런데 원전 기술이 앞선 것으로 평가받아온 일본에서 사고가 발생하였으니 행사 개최는 물론 사업의 지속 여부까지 걱정되었다. 다행스럽게 UAE는 우리 원전이 후쿠시마 원전과는 달리 쓰나미 같은 사태에도 안전하게 대응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원전 건설을 지속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추진된 많은 국제 프로젝트가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2년의 오랜 기간 중단 없이 공사가 진행되어 완성된 것은 세계 원전 역사에 매우 뜻깊은 사건이다.

국내적으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최근의 탈원전과 관련된 이슈 말고도 사업 초기에 손해 보는 저가 수주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수주 경쟁을 하였던 프랑스나 일본 컨소시움의 입장에서 ‘원전 4기를 186억 달러에 건설한다’는 것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금액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APR1400’ 노형은 국내에서 건설 중이었지만 한 번도 완공되어 가동된 적이 없는 원전이었기에 경쟁자들의 성능에 대한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이 중동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보여주었던 예산 내 적기 공급 실적과 국내에서 안전하게 원전을 건설하여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리에 완수하였다. UAE 정부의 우리 원전 건설 능력에 대한 믿음과 양국 정부의 지속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참여한 기술진의 투철한 사명감이 이루어낸 성과로 평가하고 싶다.

우리는 바라카 원전 수주 경험을 바탕으로 터키, 베트남 등 여러 나라와 추가적인 수주를 위한 노력을 하였지만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수주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시장이 안정되면서 고유가 시대가 끝난 데 기인한다. 이와 함께 금융기관들이 원전 건설을 위한 장기 대출을 꺼리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여건이 매우 나빠졌다. 많은 나라에서 원전을 건설하는 회사가 현지에서 원전을 운영까지 하고 나중에 전기판매대금으로 사업비를 회수해야 하는 구조를 선호하고 있어 사업 위험이 더욱 커졌다. 더구나 원전을 수출하는 국가가 재원 조달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 간 협력 사업으로 진행되는 경우에는 러시아나 중국이 절대적인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해외 원전 수주 시장이 제대로 된 사업을 찾기 어려울 정도의 사막이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 몇 나라가 전력의 안정 공급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원전 사업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욱 안전성을 향상시킨 소형일체형(SMR)과 같은 새로운 원전이 개발되면서 기존의 원전 시장이 변화할 조짐도 보인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가 사막에서 불을 밝힌 바라카 원전의 성공을 바탕으로 우리 원전의 추가 수주에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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