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의 정치경제학] G2 갈등에 무기로 변질된 ‘상호의존’ 원칙

입력 2021-04-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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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까지 국제질서 안정과 경제성장에 중대 기여
중국의 부상·코로나19 따른 대결 양상, 안정 구도 뒤흔들어
글로벌 공급망, 향후 2개의 권역으로 분리될 가능성도

▲2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콘웨이에서 화물 열차가 이동하고 있다. 콘웨이/AP뉴시스
미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 성장을 뒷받침해온 이론인 ‘상호의존 원칙’을 돌연 무기로 삼기 시작했다. 과거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목적으로 탄생한 이 원칙은 이제 양국 간 공급망 대결로 변질돼 서로 칼날을 겨누고 있다.

11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국은 조 바이든 정권이 들어선 직후 중국에 줄곧 강경책을 펼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정권이 펼친 대중 정책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정권은 더 나아가 거액의 예산을 공급망 재검토에 편성하는 등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중국도 보복 움직임을 보이면서 오랜 기간 지켜왔던 글로벌 공급망의 상호의존 원칙에도 금이 가고 있다.

상호의존 원칙은 과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책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에서 “전쟁을 줄이는 3가지 요인 중 하나”로 등장했다. 당시 칸트는 국가 간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국가를 뛰어넘는 무역 조약이 늘어 전쟁을 막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후 영국 고전학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에 의해 확장된 이 원칙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 안정에 이바지했다는 평을 받아낸다. 특히 1970년대 다국적 기업의 등장과 미·소 냉전의 해빙, 석유 파동 등으로 글로벌 무역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상호의존 원칙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이후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경제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원칙으로 확립됐으며 미국 정치 평론가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2005년 집필한 책 ‘세계는 평평하다’를 통해 상호의존 원칙에 대한 낙관주의는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주요 2개국(G2, 미국·중국)의 갈등으로 인해 이 원칙이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제조업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허브가 되고, 국력을 좌우하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까지 상당 수준 미국을 능가하기 시작하면서다.

이 같은 우려는 조지타운대 에이브러햄 뉴먼 교수가 2019년 발간한 책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뉴먼 교수는 상호의존성이 전 세계 널리 퍼져 있지만, 그렇게 곳곳에 형성된 네트워크 허브는 모든 나라에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새로운 지정학적 권력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닛케이는 “미국이 그동안 상호의존적인 공급망에서 사실상 독점적으로 이익을 얻어왔다”며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하기 시작한 중국이 이를 위협하고 있고 미국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고 풀이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월 주요 품목 공급망 확장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대상에는 반도체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등이 포함됐다. 또 최근 연설에선 인프라 투자 계획을 설명하면서 “중국은 우리가 인프라와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중국과의 경쟁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지난해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도 상호의존의 무기화에 박차를 가했다. 과거 전략물자라 하면 전시에 사용되는 군용품이 전부였지만, 최근에는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비롯해 의약품, 식품, 희토류, 배터리 등 그 범위가 넓어졌다. 특히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의 경우 중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수단이 됐다.

미·중의 끊임없는 경쟁 속에 전문가들은 앞으로 전 세계 공급망이 2개의 권역으로 나눠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여름 에릭 슈미트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바이든 행정부와 밀접한 외교·전략 전문가 15명이 집필한 보고서는 “기술·인프라 부문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으로 향후 전 세계 공급망이 ‘2개의 테크놀로지 권역’으로 나뉠 수 있다”며 “미국은 중국이 자신의 동맹국들과 협력해 그들의 전략을 빠르게 추진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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