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면 신화‘ 주역 잠들다…농심 신춘호 회장 별세

입력 2021-03-28 15:07수정 2021-04-3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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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농심 설립 56년간 경영 이끌어… '신라면', '새우깡' 등 다수 히트작 개발

배가 고파 고통받던 시절, 내가 하는 라면사업이 국가적인 과제 해결에 미력이나마 보탰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산업화 과정의 대열에서 우리 농심도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우리의 발걸음을 다그치고 있다. (故 신춘호 회장 자서전 “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

‘라면왕’ 농심 신춘호 회장이 27일 향년 92세로 영면에 들었다.

1930년 울산에서 태어난 고(故) 신 회장은 1965년 농심을 설립해 56년간 '신라면' '새우깡' '짜파게티' 등 대표 제품을 만들며 국내 식품사에 한 획을 그은 주역이다. 평생 라면과 스낵을 고집하는 ‘뚝심 경영’으로 지난해 사상 최고 매출을 달성하며 'K푸드'와 'K라면' 전성시대를 열었다. 1999년 쓴 자서전에서 "평생 라면을 만들어왔으니 라면쟁이요, 스낵도 만들어왔으니 스낵쟁이라고 스스로 부르기를 좋아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故 신춘호 농심 회장 (농심)

고인은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국내 롯데를 이끌었다. 하지만 1965년 말 라면 사업을 두고 형인 신 명예회장과 갈등 끝에 라면업체 롯데공업을 설립하며 독립했고, 신격호 회장은 동생에게 ‘롯데’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해 1978년 롯데공업 사명을 농심으로 바꿨다.

농심은 ‘이농심행 무불성사’(以農心行 無不成事)의 줄임말로 단순 소박하나 정직하고 인정이 넘치는 농부의 마음이란 뜻으로 신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 라면 사업에 나서며 그는 “한국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라면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철학을 견지했다.

신 회장은 탁월한 경영자이자 연구가이기도 했다. 회사 설립 때부터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는 경영 철학 아래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둘 정도로 독자 기술 개발에 공들였다. 이미 라면사업 궤도에 오른 일본 기술을 도입하면 훨씬 수월했겠지만, 그럴 경우 농심만의 특징을 담은 한국인 특화 입맛을 반영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신 회장은 당시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고 주문했다.

안성공장 설립 당시에도 이런 뚝심이 작용했다. 그는 국물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 관련 제조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일괄수주방식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는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한 것이다.

▲1982년 사발면 출시 시식회의 중인 신춘호 회장(가운데)의 모습 (사진제공=농심)

‘한국인 입맛’을 강조해 직접 제품명을 지은 일화는 유명하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당시 막내 딸(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부인인 신윤경 씨)이 ’아리랑‘ 노래를 ’아리깡~ 쓰리깡~‘으로 바꿔 부른 데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1986년 출시된 신라면과 1984년 출시된 짜파게티는 각각 국내 라면 시장에서 점유율 1, 2위를 달리는 장수 히트 제품이다. 농심의 지난해 라면 매출은 2조 868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 매출을 달성하며 글로벌 라면 기업 5위에 등극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 '집콕' 현상에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 효과까지 더해지며 이 가운데 신라면 수출액은 4400억원을 넘겼다.

라면뿐 아니라 스낵 히트작도 개발했다. 1971년 4.5톤 트럭 80여 대 물량의 밀가루를 쏟아부어 만든 우리나라 최초 스낵 ‘새우깡’이다. 새우깡 개발 당시 고 신 회장은 “맨 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재산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옥수수깡이다. 지난해 가수 비의 ‘깡’ 신드롬에 힘입어 새우깡, 양파깡 등을 비롯한 '깡 시리즈' 과자는 지난해 연매출액 합이 1000억 원을 넘어설 정도로 '국민 스낵'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 신춘호 회장의 유럽출장 당시 모습 (사진제공=농심)
농심은 그의 브랜드·경영 철학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의 마지막 메시지 역시 '품질 제일'이었다. 고인은 몇 달 전 마지막 출근 당시 임직원에게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라"고 당부했다.

그는 마지막 업무지시로 50여 년간 강조해온 품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에 그치지 말고 체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세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야 한다"며 "미국 제2공장과 중국 청도 신공장 설립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해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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