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객원교수, 에너지밸리포럼 대표
지난해 코로나19가 처음 확인된 후 대유행병으로 규정되고 놀라운 속도로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데도 마땅한 치료제나 백신마저 없어 불확실성이 매우 컸다. 급속한 확산으로 인해 의료 체제의 붕괴를 가져와 인류가 생존의 위기 상황에 이르지 않을까 염려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더구나 코로나의 원인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국제 공조를 하기 어렵게 되고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을 가는 양상이었다.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고 생활방역을 강화하면서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경험하지 못했던 침체로 빠져들었다.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빠르게 위축되고, 무역마저 줄어들자 경제위기를 극복할 마지막 보루는 정부밖에 없게 되었다. 모든 국가는 기업의 부도를 막기 위해 느슨한 금융정책을 통해 돈을 풀고 소외계층을 보호하려 정부의 지출을 대폭 늘렸다.
이제 코로나로 인한 위기상황을 어느 정도 벗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각국 정부의 정책 초점은 코로나 이후로 향한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1.9조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의 재정을 투입하여 경제 정상화를 앞당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올해 미국 경제가 6% 넘는 성장을 예상하는 것을 보면 소위 V자형 회복도 가능해 보인다. 연방준비이사회의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시중의 금리가 오르고 있으니 금융 시장은 경기에 선행하여 이미 출구 전략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금융기관들이 본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무제한 풀었던 돈을 회수하고 부도 유예 등 비상 조치를 정상화한다면 준비가 안 된 한계기업이나 영세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져 양극화가 심해질까 우려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국제금융시장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의 조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출구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가 끝나면 코로나 이전 상황으로 자연스레 돌아가고 우리는 과거에 했던 경제정책을 그대로 따라 하면 될까? 오히려 지금까지 잠복하고 있던 과제들이 한꺼번에 나타나게 되어 이를 해결할 방법과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이견으로 큰 소동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상황에서 지원금의 지급을 보편적으로 할지 선별적으로 할지 방법론을 가지고 한바탕 논란을 경험했는데 이후 닥칠 과제는 훨씬 복잡한 양상이다. 게다가 세계경제도 미중 간 무역 마찰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진영 간 힘겨루기가 가시화될 것인 만큼 우리의 입장을 어떻게 정할지도 큰 고민이다.
최우선적으로는 코로나를 극복하고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추가적 조치를 취해야 할지 결정이 필요하다. 또한 코로나19와 유사한 팬데믹 사례가 반복될 소지도 있으므로 이에 대응할 위기관리 역량도 보완해야 한다. 이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고 코로나를 겪으면서 소비 행태도 변화하는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는 더 큰 구조적 전환점에 와 있다. 유례없는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고령화는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역동성과 탄력성을 빠르게 이완시킬 수 있다. 더구나, 기후변화 대응이 국제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는데 우리 기업들이 이에 슬기롭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과거 일본이 경험했던 침체기에 빨리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처럼 우리 경제는 단기, 중기, 장기 과제들이 서로 복합되어 있다. 정책을 자칫 잘못 편다면 각 정책의 방향이 서로 엇갈리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가 악순환되는 ‘데드크로스’에 처하지 않도록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보고 제대로 된 해법과 우선순위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법이 실효성을 갖도록 이해관계의 조정과 각 경제 주체들에 대한 설득 노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단기적인 처방에 힘을 많이 뺀 나머지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