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기’ 말릴 수 있는 시대가 오길

입력 2021-03-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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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이 주식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다. 근로소득을 저축하는 것만으로는 서울에 집을 살 자신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손이 빌 때마다 퀭한 눈으로 유튜브를 보고 주식투자 관련 책을 읽으며 미국 시장과 국내 시장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 시장에는 돈이 흘러넘쳐 상장사들은 신사업을 찾느라 분주하다고 한다. 특히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업체는 몸값이 높아진 것을 넘어 시장에서 씨가 말랐다는 말까지 나온다. 비단 바이오뿐만 아니라 신성장 동력이 될 법한 신사업이나 스타트업 등은 몸값이 한참 올라 제철 방어보다 우람한 자태를 자랑한다고 한다.

요즘 주식시장을 보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장이 펼쳐지고 있다. 코스피는 신고가를 경신했고 개인이 장을 주도하는 장세까지 등장했다. 망할 리도 없지만 오를 리도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대형주들이 장중 10% 넘게 폭등하는 사례는 이미 흔해졌고, 일부 종목은 상한가를 며칠 연속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오름폭이 더 큰 가상화폐는 언급하는 것만으로 투기를 부추기는 것으로 비칠까 우려돼 조심스러울 정도다.

‘주식의 시대’. 시대가 젊은층에게 주식 투자를 강요하고 있다. ‘내집 마련’으로 대변되는 세대ㆍ계층간 격차로 인한 박탈감과 상실감이 극단적으로 불어난 상황에서 주식은 '마지막 계층이동 사다리기'로 불린다. 주식이나 코인으로 목돈을 벌었다고 주장하는 많은 ‘누군가’들도 주식시대 가속화에 한몫하고 있다.

지인에게 어떤 공부를 했냐고 물어보자 유튜브를 통해 음봉ㆍ양봉 등 차트보는 법과 단타 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무주택자에 30대로 돈을 많이 벌어 언젠가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 목표다.

투기였다. 주식 투자라도 해야 내 집 마련이란 ‘꿈’을 꿔볼 수 있는 시대에서 상식은 ‘투기’와 ‘투자’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말릴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투자’로 ‘내 집’을 살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로또에 당첨돼도 집 한 채를 사기 어려운 시대다. 상식은 시대가 만든다. 젊은 층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폭주하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 답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 금융당국, 학자 누구라도 좋다. 이들에게 ‘투기’말고 ‘투자’를 해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제시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혹시나 어릴 때 공부 열심히 해서 연봉을 많이 받으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이들을 위해 언급하지만, 저 지인이 바로 그 ‘어릴 때 공부 열심히 해서’ 현재 연봉 1억 원 넘게 받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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