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확장재정 반대논리를 반박함

입력 2021-02-24 05: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유승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장

정부 재정정책을 확장하자는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가부채의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재정 확장론자들은 우리의 국가부채 수준이 낮다는 점을 강조해왔고, 최근에는 한국은행의 국채 직접 매입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한다. 반대 측에서는 여러 근거를 들어 재정 확장에 반대하며 한국은행의 국채 직접 매입에도 강하게 반대한다.

국가부채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 일이 전례 없는 일은 아니다. 1930년대 일본과 1940년대 미국에서 중앙은행은 국채를 직접 매입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조기에 대공황에서 탈출했고 미국은 전쟁비용을 원활히 조달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를 통해서 국채를 발행시장이 아닌 유통시장에서 주로 매입했다. 어떤 경우이든 중앙은행의 국채 보유 증가는 재정을 발권력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확장 재정의 반대 측이 자주 거론하는 것은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은 국가부채가 많아지면 위험하며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도 같은 논리로 선택할 수 없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한 학자는 한국이 비기축통화국 중에서 국가부채가 3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상당히 의아하다. 왜냐하면 기축통화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는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벨기에의 경제학자 로베르 트리핀이 1960년 즈음에 달러를 두고 처음 사용한 말이다. 왜냐하면 1944년 만들어진 브레턴우즈 체제에서는 달러가 금과 연계되었고 다른 통화는 달러에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1년 닉슨이 달러를 더이상 금과 교환해 주지 않기로 선언하면서 기축통화는 사라졌다. 이후 모든 화폐는 나라의 주권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명령화폐이다.

한 학자는 현재 외환시장에서 기축통화로 인정받는 화폐가 달러, 유로, 엔, 파운드 등 8개이며, 한국은 그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통화들은 대외거래에 필요한 외환보유고상의 화폐를 말하는 것이지 특별한 속성의 화폐가 아니다. 달러가 관행적으로 대외거래에 널리 사용되고 유로는 회원국 간 결제에 사용되기 때문에 준비통화로서 큰 비중을 차지할 뿐이며, 파운드, 엔 등은 관련국의 무역이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이 경제 규모가 더 작은 호주, 스위스 등이 누리는 기축통화국 지위를 누리지 못해서 국채 발행에 제약이 있다면 얼마나 부당한 세계질서인가? 물론 국채의 대외수요가 많은 미국의 경우에는 국채 발행이 다른 나라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 표시의 국채를 매입한다면 한국과 미국 등 나라 간의 차이는 없다.

두 번째로 한국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면 통화량이 크게 늘어나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자주 거론된다. 경제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이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전쟁, 정치적 혼란과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국가가 통치력을 상실한 경우에 발생한다. 정부의 재정정책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으로 뒷받침하는 정책 협력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가능성은 낮다. 또한 현재 걱정해야 할 것은 디플레이션이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은 과도한 부채 부담을 줄여주면서 경제 활력을 이끌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경제 활력의 표현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 국채 발행에 의한 통화량 증가로 원화가 약해져서 외자가 대거 빠져나가는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외국인들이 원화 약세를 전망하고 한국의 자산을 매각하여 달러로 교환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 채무국이 아니라 순채권국이다. 우리나라의 순채권 규모는 2019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약 30%에 달하는 4806억 달러이다. 외환위기를 통제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경제 위기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정책의 여지가 넓다는 사실을 굳이 부정해서는 안 된다.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길 수 없다는 주장이 호소력 있게 들리지만 적극적 재정 운용으로 경제 기반을 보전하는 것이 다음 세대를 더욱 위하는 일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