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금리의 역설] “연이자 2000%”…법정금리 비웃는 ‘일수꾼’ 활개

입력 2021-02-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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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올 7월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까지 내리기로 했다. 2년 만의 최고금리 인하다. 시장에서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 조치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대부업체들도 신용대출 영업을 줄이면서 서민들의 돈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번화가에 뿌려져 있는 대출 전단지. 연합뉴스

‘살인적 이자’에도 제도권 대출 어려운 저신용자들 급전 창구
정책서민금융 이용 고작 10%…대부업 시장 보완하기엔 무리
등록 대부업도 ‘일수’ 등 소액대출 업무, 합법수요로 전환해야

김 씨는 돈을 갚지 못해 채무를 조정받은 사례지만, 이처럼 연 이자율이 급격하게 늘어난 경우는 눈에 띌 정도로 예외적인 일은 아니다. 특히 김 씨처럼 주수(週收·일주일마다 갚는 대출)뿐 아니라 일수(日收·하루마다 갚는 대출)가 빈번하게 거래되는 시장에선 현행 법정금리는 가볍게 초과하고 만다. 김 씨가 빌린 40만 원은 현행 법정 최고금리인 24%의 범주 안에선 한 달에 1만 원 이상 이자를 받으면 안 된다. 현실적인 거래 수수료를 고려해도 ‘일수’ 시장은 합법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법이 되는 것이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도 불법 사금융의 ‘일수꾼’이 합법을 가장한 영업을 일삼고 있다. 소액의 자금을 요구하는 사람은 대개 직장이 없거나, 일용직이거나, 기대출 규모가 상당한 경우다. 등록 대부업체는 차치하고 미등록 불법업체도 이들에게선 ‘상환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월변이나 급전도 이들 시장에선 꽤 신용도가 높을 경우에나 취급된다. 따라서 수익률을 극대화하고 단기간 상환을 약속할 수 있는 ‘일수’가 유일한 대안이 되는 것이다. 이 시장에선 채무자와 채권자가 비공개로 매칭되기에 정확한 이자를 계산하기 어렵지만, 주로 이용한 사람들 사이에선 “보통 50만 원을 빌리면 80만 원을 갚아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대개 일수는 선 수수료로 5%를 떼가고, 나머지를 상환 일정에 맞춰 금액을 균할한다. 하루마다 이자를 받는 구조기에 보통 연 이자율 500%를 가볍게 초과한다. 법정 최고금리의 숫자가 무색할 정도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몇천 원 받자고 일수 영업을 할 등록 업체는 없다”라며 “이쪽 수요는 불법시장에서만 (충당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햇살론 ‘정책금융’도 그림의 떡

이들은 햇살론 등의 정책자금으로도 포용하기 쉽지 않다. 고금리의 부당함을 감당하고서라도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2018년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리려는 목적은 ‘필요자금을 금융기관에서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 63.5%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신속한 대출(26.0%)이었다. 서류가 간단하다는 이유도 15.7%로 조사됐다. 시장 상인을 중심으로 발전한 대부업은 제도권 금융 대출이 가능하더라도 편하고 빠르다는 이유로 여전히 ‘일수’를 사용하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는 이들 시장을 억제하는 변수가 되지 않는다. 일수 시장은 수요는 여전히 방대한 데 반해 이를 충족해 줄 ‘합법’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대출 정책의 벽을 낮추고 공급량을 확대해도 이 시장을 전부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다. 등록 대부업체마저도 대출을 거절당한 뒤 정책서민금융을 이용한 비율은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부모나 지인에게서 돈을 빌리거나 미등록 사금융업자를 이용했다. 일수의 일부분을 등록대부업체가 수용할 수 있도록 조정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윤형호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법·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본 불법사금융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논문에서 “공공대출은 대출 규모도 적고 대출조건이 엄격해 쉽게, 적기에 대출받기가 어렵기에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일수를 등록대부업의 업무로 끌어들여 불법수요를 합법수요로 전환하는 것은 유용한 수요대책이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조달금리 보완無…‘소액·단기’ 대출 외면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다른 요소에선 변인이 된다. 대부업 시장의 체질 개선에 일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장의 변화가 소액 대출 시장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금융협회가 대부공급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8년 2월 최고금리가 27.9%에서 24.0%로 인하된 이후에 대부업체 규모가 양극화됐다. 자본금이 큰 회사는 작은 회사를 흡수하며 덩치를 키웠지만, 소액 위주의 대출을 하던 규모가 작은 대부업은 문을 닫았다. 올 하반기 금리가 20%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 이 상황은 더욱 악화 될 전망이다. 다수의 공급자는 금리 인하시 대출을 중단하고 인력을 감축하거나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에 나설 것이다.

양극화 문제는 소액 대출을 배제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금리 기준이 높아 그나마 수익성이 높았을 때는 레버리지는 키우는 방법으로 사업성을 감당했지만,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는 은행처럼 안전성을 확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점차 규모가 크거나 신용도가 안정된 대출을 선호하는 추세가 됐다. 특히 금리 수준이 내려가면서 ‘신용대출’ 대신 ‘담보대출’로 선회하면서 소액 대출 수요자가 대거 탈락한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대부업도 금리 인하 이후에 소형 업체를 중심으로 도산이 줄을 이었다.

일수 등의 소액 대출이 합법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배경에는 등록 대부업체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 거래에 수반되는 수수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등록 대부업체의 자금조달 비용은 18~19% 선에서 결정된다. 제1 금융권에선 돈을 빌려오지 못하는 대부업체는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한다. 공모사채의 발행도 금지돼 있어 비용절감이 쉽지 않다. 여기서 5~6%의 비용이 들고 대손비용으로 10%가 지출된다. 광고비용이나 중개 수수료를 고려하면 10% 후반대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일본 대부업계는 은행 차입 비중이 높아 조달금리는 연 1%에 불과하다. 이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비용이 부과되고 있는 셈이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기존 대부업은 원래부터 1000만 원 이하의 소액 위주의 대출이 많다”라면서도 “더 적은 금액의 경우 업체가 대출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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