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빚의 재앙, ‘악어 입’ 재정위기

입력 2021-02-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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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나라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가 ‘악어의 입’을 말했다. 곳간 거덜나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선심성 돈풀기로만 치닫는 여당에 맞선 재정위기의 경고다. 세수는 줄고 지출이 계속 늘어 나라살림이 구조적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재정지출 그래프가 줄곧 위로 치달은 반면, 세입은 바닥으로 내려간 모습이다.

일본은 고도성장기인 1970년대 복지 확대로 재정지출이 늘기 시작했다. 90년대 경제거품이 꺼지자 문제가 나타났다. 재정은 한 방향으로 커지기만 하는 불가역성(不可逆性)을 갖는다. 일본 정부는 빚을 내 복지지출 적자를 메웠고, 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재정을 쏟아부었다. 땅도 좁은 나라에 90여 곳의 지방공항과 수많은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선거에서 표 얻는 데 급급한 정치인들의 작품이다. 비행기 없는 공항, 자동차는 별로 다니지 않는 ‘다람쥐 도로’가 양산됐다.

1980년대 말까지 균형을 이뤘던 일본 정부 세입·세출에 틈새가 벌어졌다. 인구 고령화까지 겹쳐 세출은 급증하고 세입이 쪼그라들어 쩍 벌린 악어 입 그래프가 그려졌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1990년 64%에서 96년 100%를 넘었고, 2002년 150%, 2009년 200%대로 치솟았다. 작년에는 240%를 웃돈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일본은 괜찮다. 해외의 금융순자산이 3조 달러(340조 엔) 이상으로 세계 1위다. 기업이 외국 사업체를 많이 사들였고, ‘와타나베 부인’들이 해외 주식·채권에 대규모로 투자한 돈이 방어벽이다. 정부 국채의 90% 이상을 중앙은행과 국민이 보유한다. 이 채권이 매도될 염려없이 금융시장을 지탱한다.

일본은 사실상 기축통화국이다. 엔화는 국제결제 통화로 대표적 안전자산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하면 돈이 일본으로 몰리고, 중앙은행이 돈 찍어 풀어도 문제가 안 된다. 아베 신조 정권이 2012년 출범 후 엔화를 마구 발행해 경기 추락을 막는 방법을 썼다.

한국 재정이 악어 입에 들어가고 있다. 정부의 돈 씀씀이만 커지고, 경기 후퇴와 기업실적 부진으로 세금이 덜 걷히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근거가 뭐냐?”는 한마디에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이었던 국가채무비율 40%가 간단히 무너진 것이 방아쇠였다.

작년 국세 수입이 285조5000억 원으로 2019년보다 2.7% 줄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3.0%) 이후 최대 감소다. 반면 코로나19 충격으로 정부는 4차례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지출이 급증했다. 앞뒤 안 가린 팽창재정에 돈이 모자라 적자국채 발행으로 메웠다. 나라살림 지표인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작년 11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채무는 2019년 723조2000억 원(채무비율 37.7%)에서 지난해 846조9000억 원(44.2%)으로 급격히 늘었다. 올해는 본예산만으로도 빚이 956조 원, 채무비율 47.8%를 넘는다.

IMF는 최근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GDP대비 채무비율이 2025년 64.96%로 급등할 것이라며 재정건전성 문제를 환기했다. 중앙·지방정부 채무(D1)에 비영리공공기관 빚을 더한 일반정부 부채(D2) 기준이다. 올해 52.24%, 내년 55.80%, 2023년 59.25%, 2024년 62.27%로 상승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러나 이것도 부채규모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우리는 많은 정부사업을 공기업이 떠맡는다. 이를 포함한 나랏빚인 공공부문부채(D3)가 이미 2019년 1132조6000억 원, 채무비율 59%에 달했다.

우리는 빚을 끌어올 기초여건부터 일본과 다른 악성(惡性) 부채다. 중앙은행이 돈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나라도 아니다. 빚을 더 내 이자를 갚아야 하는 지경이 되면, 국가신용과 원화값 추락으로 자본이 탈출한다. 그런데도 정권은 코로나19를 빌미로 4차 재난지원금 추경과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한 자영업 손실보상에, 기본소득제 주장까지 돈 퍼붓기로 일관하고 야당까지 거든다. 4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으로만 치닫고 있다.

불과 20여 년 전 우리는 빚으로 만들어진 경제 거품이 꺼지고 해외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국가부도 위기를 맞으면서 IMF 구제금융을 받았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지금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모든 경제위기는 정부·기업·가계의 과도한 빚에서 비롯된 것이 역사의 증거다. 정치꾼들은 우리 재정건전성이 선진국보다 양호해 빚을 더 늘려도 되고, 한은이 무제한 돈을 찍어내야 한다며 무식한 목소리를 높인다. 빚 갚아야 할 국민을 속이고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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