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호의 세계경제] 더 열심히, 더 잘,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강력하게

입력 2021-02-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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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시간’ 맞닥뜨린 미국, 바이든은 성공할까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프랑스의 세계적인 뮤지션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2001년 곡이다. 미국의 재건을 위한 구호(“Build Back Better”)를 외치는 바이든 정부를 보면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세계를 향한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이 쇠퇴기(twilight zone)에 들어섰다.” 이 말은 저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미·중 간의 충돌을 투키디데스 함정으로 설명해서 더욱 널리 알려진 하버드대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의 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말이 그의 최근 저서에서 언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1970년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창간호에 실은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50년 전 미국에서도 자국 패권의 쇠퇴가 논의되고 있었으며 워싱턴은 새로운 전략을 세우기 바빴다. 포린폴리시가 창간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1971년 금본위 달러 기축통화 체제인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를 경험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연 미국으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위기였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의 쇠퇴는 유럽의 부흥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에 기인했다. 재미있는 점은 전후 이들의 복구를 도왔고, 이들을 위해 자국 시장을 개방했으며, 안보까지 제공했던 것이 미국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미국의 혜택을 받았던 국가들의 부상이 미국을 위협했다.

최근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위기감도 이와 상당히 유사하다. 미국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도왔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의 WTO 가입이 미국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중국이 경제 개혁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시장경제 체제로 변모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중국은 공정한 경쟁에 기반한 무역과 투자 규범을 내재화하지 않았다. WTO 회원국으로서의 혜택만을 활용하며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통상 정책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시각은 2월 10일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다시 한번 드러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홍콩과 신장에서의 인권 침해,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더불어, 강압적이고 불공정한 통상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정책적으로 환율과 대규모 생산 과잉을 통해 글로벌 가격을 왜곡하고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여 경쟁자들을 희생시키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왔다고 인식한다.

바이든은 1월 취임사에서 지금이 미국에 있어 “시험의 시간(time of testing)”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시험으로 여섯 가지를 언급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코로나19, 빈부격차의 확대, 인종차별, 기후변화,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지금은 어쩌면 소련 붕괴 이후인 1990년대에 이어 세계 정치경제 질서 재편 가능성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열린 가능성이자 불확실성이다. 지금은 어떠한 새로운 전략을 세우고 리더십을 발휘하는가가 중요하다.

결국 바이든 정부의 성패는 미국이 얼마만큼의 비용을 감당할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케네디 독트린은 우리에게 쿠바 미사일 사태와 남미 공산화에 대한 봉쇄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근저에 깔린 핵심은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언급한 자유라는 가치의 사수와 번영을 위해 어떠한 어려움을 감수하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동맹국을 지원하고 적에 대항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가치와 동맹의 강조라는 점에서 바이든 정부의 정책 기조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바이든 정부도 동맹을 위해 어떠한 비용도 지불할 각오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바이든 정부의 1조9000억 달러 추가부양책의 적정성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고, 연일 폴 크루그먼(Paul Krugman)과 같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적정한 국가부채 수준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다. 쌍둥이 적자를 겪고 있던 레이건 정부로부터 정권을 이어받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이미 1989년 취임사에서 “미국은 의지는 있지만 지갑이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탈냉전을 맞아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 싶었지만 그럴 돈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2021년 코로나19로 엉망이 된 미국의 사회·경제·정치를 마주한 바이든 정부는 과연 어디까지 국내 재건과 세계 질서 재편에 성공할 수 있을까. 더 열심히, 더 잘,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강력한 리더십을 미국은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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