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배 일본보다 변시 합격자 많아…"법률 서비스 질 떨어질 것"
5명 후보자 경쟁해 당선…"다양한 목소리 반영하겠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때였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귀가하던 중 괴한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었다. 사고의 충격이 컸지만 그해 여름 2차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사고를 계기로 불법과 폭력에 맞서야겠다고 다짐해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3년 후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이종엽 제51회 대한변호사협회장 당선인은 3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검사는) 업무 강도가 높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변호사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 당선인이 처음 변호사로 활동했을 때만 해도 사법시험 연간 합격자 수는 300명대에 그쳤다. 변호사 배지를 달면 사건 수임이 어렵지 않던 시기였다. 하지만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자 상황이 변했다. 변호사 합격자 수가 증가하면서 사건 수임을 둘러싼 변호사들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지난해 배출된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는 1768명이다.
이 당선인은 정부가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변호사의) 진출 경로를 확대해 최고조로 악화한 송무 시장에 대응한 일자리를 창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변호사 수만 증가하다 보니 송무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당선인은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 감축’을 취임 이후 가장 먼저 다룰 사안으로 꼽았다. 그는 지난달 28일 당선증 교부식 직후 기자회견에서 “개업 변호사들은 사무실 유지조차 버거워하고 청년 변호사들은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며 “과잉 공급되고 있는 변호사 숫자를 적정한 수로 감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를 결정하는 법무부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를 겨냥했다. 그는 “경제 규모와 인구가 우리의 약 3배에 이르는 일본도 연간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는 1500명”이라며 “임기 시작 즉시 변호사 시험 합격자 정원 대책 TF를 구성해 실질적인 활동에 돌입하고 4월께 법무부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합격자 수 감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변호사 수가 늘면서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 당선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무한경쟁 체제에서는 오로지 저가 경쟁에만 매달리게 될 우려가 있고 ‘되는 소송’, ‘해야 하는 소송’이 아니라 '부추기는 소송'이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결국 법률 서비스의 질은 물론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지수 저하로 이어져 선진 사회로 발전하는 데 장애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당선인은 같은 맥락에서 로스쿨 결원보충제 폐지를 주장했다. 결원보충제는 자퇴나 등록 포기로 결원이 발생하면 다음 해 신입생을 입학 정원의 10% 범위 안에서 추가 선발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다른 전문자격사들과의 직역 갈등은 더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당선인은 앞선 기자회견에서 직역 갈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세적으로 대응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변호사들이 유사 직역으로부터 봉쇄당하고 있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변협은 그동안 행정사, 세무사, 노무사, 변리사 등과 직역 갈등을 겪어 왔다. 변협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대목은 소송대리권이다. 전문자격사들이 각자 분야에서 소송대리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변협은 줄곧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 당선인은 “과거 변호사가 희소해 문턱이 높았을 때는 유사 법조 직역에 종사하는 분들이 일정 부분 그 공백을 메워 법률 업무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변호사 대중화’가 현실이 된 지금도 유사 법조 직역의 종사자 수는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로스쿨 제도가 시행된 지 12년이 지나 제도가 정착되고 변호사 대중화로 언제 어디서든 변호사를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됐고 변호사들이 유사 직역이 담당한 업무에도 진출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유사 직역의 역할과 기능, 업무 범위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률 플랫폼 업체를 향한 강경한 대응도 예고했다. 이 당선인은 과거 법률 플랫폼 업체인 네이버 엑스퍼트, 로톡 등을 형사고발 하기도 했다. 네이버는 현재 수수료를 5.5%에서 1.6%로 낮춘 상태다.
이 당선인은 “법률 플랫폼에 대해 변호사법과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확인해 적극적으로 고발ㆍ신고 조치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공세적 대응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률 플랫폼을 놓고 디지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시각도 있다. 법률 플랫폼을 규제할 경우 ‘타다 금지법’처럼 새로운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단호했다. 그는 “법률 플랫폼은 사실상 변호사법이 금지하고 있는 비변호사의 변호사 소개ㆍ알선ㆍ유인행위 즉, 사건 브로커와 그 구조가 다를 바 없고 법률 서비스를 받으려는 국민이 변호사에게 접근하는 경로를 완전히 장악해 경제적 이득을 꾀하려는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이 당선인은 “최근 법률 플랫폼은 AI 형량 미리 보기 서비스라는 단계까지 나아갔는데 이것은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변호사 업무와 법률 사무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법률 플랫폼은 사건 수임의 무한 경쟁 상황에 놓인 변호사들의 다급함을 이용해 영리를 추구하고 법률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변협 살림을 챙기는 일도 이 당선인의 몫이다. 이 당선인은 취임 이후 현안 중 하나로 재정운영 개혁을 꼽기도 했다.
이 당선인이 제시한 방안은 △협회장ㆍ임원의 과도한 의전 폐지 △협회장ㆍ임원 특권 내려놓기 △과도한 국제교류 축소ㆍ간소화 △각종 위원회 통폐합 △감사위원회 실질화 통한 실효적 회계감사 시행 △예산결산위원회의 적극적 운영 △경비 절감 등이다. 이를 통해 회원들의 분담금을 인하하겠다는 구상이다.
집행부 구성도 과제다. 이 당선인은 청년 변호사와 중견 변호사를 적절히 안배해 집행부를 구성할 계획이다. 그는 젊은 변호사들을 주요 지지층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이 당선인은 “로스쿨이 도입된 이후 젊은 변호사 숫자가 단시간 내에 급증했지만 청년 변호사라는 이유로 이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있고 법조계 특유의 경직된 문화 때문에 중견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면서 “젊은 변호사와 중견 변호사, 여성 변호사를 아우르는 균형 있는 집행부를 구성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는 5명의 후보자가 출마했다. 변협 창립 이후 출마자 수가 가장 많았다. 이 당선인은 결선 투표에서 조현욱 후보자와 경합을 벌인 끝에 득표율 58.6%(8536표)를 얻어 당선됐다. 결선 투표 전 황용환ㆍ이종린 후보자는 조 후보자 지지를 선언했다. 박종흔 후보자는 이 당선인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당선인은 “박종흔 후보님의 공약 중에서 이행이 가능한 것을 의논해 반영하고 다른 후보님들의 공약 중에서도 유사 직역에 대한 대응, 변시 합격자 수 감축 등 핵심적인 대의에 있어서 실현 가능한 공약이 있다면 변협 업무에 반영하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속대로 강한 변협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다”며 “단결과 화합의 마음으로 믿고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