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1인자된 민 아웅 흘라잉은 누구?

입력 2021-02-01 17:33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2011년 군 최고사령관 부임
로힝야족 탄압 책임자로 지목돼 미국 제재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이 2016년 7월 19일 양곤에서 열린 순교자의 날 행사에 참석해 경례하고 있다. 양곤/로이터연합뉴스

미얀마 군부가 1일(현지시간) 쿠데타를 공식 선언하면서 미얀마의 모든 권력을 쥐게 된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그는 군이 미얀마 정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조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ST)에 따르면 미얀마 군은 보안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해 내부 인사에 관해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대외적으로 공개된 정보를 종합하면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오랫동안 군에 몸담았지만, 정치적 행보를 보인 것은 최근이었다.

그는 1956년 7월 3일 미얀마 다웨이에서 태어났다. 1972년 미얀마 양곤대학교(당시 명칭 랑군 인문사회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하다 1974년 사관학교(DSA)에 입학해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동기들은 그가 내성적이고 조용했다고 기억했다.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소수민족 반정부 조직인 통합와주군(UWSA)과 민족민주동맹군(NDAA)와의 협상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승승장구했다. 2011년 3월 군 최고사령관이 된 그는 2012년부터 군부가 미얀마 정치에 지속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미얀마에서 군 최고사령관은 군 통수권과 경찰 통수권을 갖고 있다. 국방부와 국경부, 내부무 장관을 지명해 추천하면 대통령은 형식적으로 이를 임명한다. 미얀마 헌법에는 외국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 아웅산 수치 여사는 2015년 총선 승리 이후 국가고문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실질적으로 국정을 이끌어왔다.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그동안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았지만, 2016년 수치 국가고문이 정식 취임한 이후 군인이 아닌 정치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는 같은 해 최고사령관 직을 5년 더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군 내부에서는 그가 연임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2017년 미얀마군이 저지른 로힝야족 탄압의 책임자로 지목받았다. 유엔 인권이사회(UNHRC)의 조사단은 2018년 로힝야족 탄압 사태와 관련해 “미얀마 군부가 인종 청소 의도를 가지고 대량학살과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다”며 흘라잉 최고사령관과 다섯 명의 장성을 국제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은 2019년 7월 흘라잉 최고사령관과 관련자 4인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같은 해 12월 재무부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에 따라 흘라잉 최고사령관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됐고 미국인이나 미국 기업과의 거래도 금지됐다. 2019년 12월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에 대한 재판이 열렸는데, 수치 국가고문이 미얀마 실권자 자격으로 재판에 참석했다.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부패와 이해 상충 의혹도 받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엠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미얀마 군 소유의 미얀마군인복지법인(MEHL)의 최대 주주로 연간 25만 달러(약 2억8000만 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그의 아들은 스카이원 건설사 등 여러 민간기업을 소유하고 있는데, 흘라잉이 최고사령관이 된 후 입찰 없이 정부와 30년간 토지 무상 임대 계약을 맺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