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회사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영화 더 컴퍼니맨과 일자리

입력 2021-01-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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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를 바라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영화 '더 컴퍼니맨'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멋지게 잘 빠진 포르쉐 차, 으리으리한 회사 건물. 이 모든 걸 가진 바비(벤 애플렉 분)는 잘나가는 성공한 회사원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한 바비. 하지만 이상하게 회사 분위기는 좋지 않고, 바비는 부서 통합으로 인한 구조조정 소식을 듣는다. 12년 동안 청춘을 다 바친 회사였지만 떠날 때 그의 손에 쥐어진 건 잡동사니가 든 상자 하나와 약간의 퇴직금뿐이었다. 영화 '더 컴퍼니 맨'(The company men, 2010)이다.

영화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배경으로 한다. 경제 위기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자 구조조정으로 잘린 세 남자가 등장한다. 12년 차 영업부장 바비, 환갑이 다 된 나이에 해고 통보를 받은 필(크리스 쿠퍼 분), 회장의 경영 실책에 쓴소리하다 잘린 간부 진(토미 리 존스 분)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바비의 눈물 나는 재취업기다. 바비는 37세 가장으로 12년간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엘리트였지만, 회사 밖에서 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와 같은 경영학 석사 출신 고학력 실업자가 발에 채는 게 현실이기 때문. 결국, 그는 있던 집과 차도 팔고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처남에게 목공 일을 배우게 된다.

▲사람은 많은데 일자리는 없는 상황. 영화 속 필처럼 나이가 많을수록 재취업은 더 쉽지 않다. (출처=네이버 영화)

더 컴퍼니 맨이 그리는 실업의 아픔은 영화 속 특별한 서사가 아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지금, 실업은 세계 각국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공통의 문제다. 지금 당장은 괜찮더라도 언제 누군가에게 닥칠지 모르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실업 급여 지급액은 약 12조 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기존 최대 기록인 2019년 지급액(8조913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실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실업 급여마저 끊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업 급여 중 하나인 구직 급여는 고용보험 가입 기간 등에 따라 최장 240일까지만 받을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해 3월 구직 급여를 받기 시작했다면, 벌써 종료되고도 한참 지났을 기간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제출받은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구직급여 수급이 끝났거나 종료 예정인 이들은 66만7594명이다.

특히 실업 문제는 코로나로 큰 타격을 받은 여행·관광·서비스 업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행업계 1위 하나투어는 현재 구조조정으로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18일 하나투어는 정부 지원금이 끊기자마자 곧바로 구조조정에 나섰는데, 전체 직원 2300여 명 중 1000~1600명이 권고사직 대상자다. 롯데관광개발은 지난해 무급휴직과 여행 부문 직원 300여 명 중 3분의 1 넘게 희망퇴직을 받아 인력을 줄였다. 자유투어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130명이 넘었지만, 지난해 상반기 30명 수준으로 줄였다.

▲석사 출신 엘리트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바비는 높은 재취업의 벽을 절감하고, 처남에게 목공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출처=네이버 영화)

더 큰 문제는 과학기술과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일자리가 줄며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국제로봇산업연맹(IFR)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공장에 투입된 공업용 로봇은 37만3000대에 달한다. 공업용 로봇 숫자는 2014년 이후 매년 약 11%씩 늘어나 현재 약 270만 대에 달한다. 불과 몇십 년 전 사람으로 가득 차 있던 공장은 이제 텅 빈 채 기계 소리만 돌아가고 있다.

서울대 공대의 유기준 교수팀은 2017년 발표한 ‘미래 도시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보고서에서 2090년에는 한국 사회 직업 대부분이 AI 로봇으로 대체 되리라 예측했다. 아울러 AI 기술을 독점해 플랫폼을 소유한 극소수 IT 기업 0.001%만이 일자리를 독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AI 기술이 발달해 저숙련 일자리가 사라져도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돼 일자리의 총량이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일자리 총량이 변하지 않더라도 산업 구조 전반이 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진통은 불 보듯 뻔하다.

▲영화는 '청춘을 다 바쳐 일한 회사임에도 결국 우리는 한낱 나사일 뿐. 회사는 절대 우리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라는 뼈아픈 사실을 신랄하게 그린다.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는 재취업 현실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책임은커녕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경영진의 모습도 그대로 그린다. 회사가 어려워진 데는 회장 짐의 독단적 경영과 무분별한 건물 확장이 영향을 줬음에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구조조정으로만 이를 해결하려 한다.

회사 창립 멤버였던 진은 무책임한 구조조정과 경영 실책을 비판하다 해고당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지고 있던 회사 주식이 올라 더 부유해진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진은 결국 새로운 결심을 하며, 책임지는 멋진 경영진으로서 모범을 보인다.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할리우드식 긍정 회로 결말이다. 결국 직장인은 회사에 큰 기대를 걸지 말고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것이 정답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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