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미-중-EU의 CBDC(중앙은행디지털화폐) 삼국지

입력 2021-01-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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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금본위로 돌아가자(Return to the gold standard)!” 이는 미국제일주의를 내세우는 가장 보수적 주장 중 하나다. 물론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를 철저히 무시해 왔으나, 2011년 이후 최소 미국 6개 주에서 금과 은을 화폐로 인정하는 법이 통과되거나, 공화당 내에서 꾸준히 금본위 위원회를 요구하는 등 이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옹호하며 ‘새로운 브레튼우즈 회의’를 통해 다시 달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미국의 보수주의가 1971년 스스로 절명시킨 금본위 달러 기축통화제를 심폐소생시키려 하는 동안, 중국은 기축통화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야심찬 계획을 진행해 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를 도입하여, 4차 산업혁명 기술과 함께 도래할 디지털기축화폐 역할을 선점하려는 것이다. 이미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소액결제용 CBDC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지난해부터 중국 인민은행은 선전, 쑤저우, 슝안신구, 청두 등 일부 지역에서 디지털 위안화 테스트를 추진해 왔다. 중국 정부가 2022년 2월 개최될 베이징 동계올림픽 전까지 CBDC 위안화를 정식 도입하여 상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에 밀리지 않으려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행보가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CBDC는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암호화폐가 사적 영역에서 운용되고 있는 것이라면, CBDC는 각국 정부가 발행하는 공적 영역의 디지털 화폐다. 아직 도입 단계라 일률적이지 않으나, CBDC는 국가의 종이화폐를 디지털화폐로 대체하는 개념으로 발행될 것이다. 하지만 CBDC 또한 암호화폐의 기능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기존 화폐의 거래에 필요한 은행, 금융회사 등의 중간 매개체 없이 블록체인상의 거래 증거로 상용될 수 있어 즉각적이고 투명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 후보가 CBDC 도입을 선언하여 비트코인 가격이 수직상승한 바 있다.

기존의 암호화폐 시장에 도전한 페이스북의 리브라(Libra)는 비자, 마스터카드, 페이팔, 우버 등 굴지의 기업들의 참가를 이끌어 리브라 연합을 만들었다. 이들은 ‘국경 없는 금융 사회’를 목표로 2020년 이내 서비스 출시를 예고하였으나, 주요 7개국(G7)의 강력한 압박으로 좌초되었다. 이후 다수의 기업이 탈퇴한 상태에서 페이스북은 디엠(Diem)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출시할 계획을 이어가고 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디엠과 국가 단위 CBDC 등 올해는 화폐제도에서의 기념비적 전환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U 또한 CBDC 발행에 합류하였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통상 권한 및 시장 권한이 연합에 이양된, 역내 단일 시장을 갖춘 EU는 디지털 유로(euro)를 위한 각국의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 화폐는 발행량 조절과 통화 흐름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달러를 무한 공급한다거나, 중국 위안화 등 특정 화폐들의 인위적 평가절하 노력도 반감시킬 수 있다. 게다가 EU는 현재 19개 유로존 국가가 사용하는 단일 화폐 지역에서 CBDC를 유통시킬 수 있어 유리한 입장이다. 또한 유럽중앙은행(ECB)은 CBDC 도입을 통해 각국의 유로 발행량과 통화 흐름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 2010년대 초 겪었던 유로준 위기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각국 통화정책에 적극 개입할 수도 있다.

ECB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디지털 유로에 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조사에는 8000여 개 기업과 시민의 응답이 집계되었으며, 조만간 그 결과를 바탕으로 유로화 CBDC 추진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럽 각국 정부는 국제적 통용화폐와 결제화폐로서 유로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ECB가 주도하는 유로 CBDC가 세계 최초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영국, 일본, EU, 스위스, 캐나다 및 스웨덴의 6개 중앙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은 올해 공동으로 CBDC를 연구하는 그룹을 설립해 미·중을 제치고 이 분야를 선도하기 위한 기반을 닦고 있다.

올해 미·중과 EU 내 CBDC 도입이 속속 진행되며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 정부도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행 또한 작년 말부터 CBDC 파일럿 테스트에 돌입하며 국제적 흐름에 합류하였으나, 통화·결제 시스템의 근간을 바꿀 CBDC 경쟁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와의 연계 전략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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