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공연산업 핀셋형 코로나 대책 필요"

입력 2021-01-18 06:00수정 2021-01-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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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내 감염률 0%…공연 종사자 생계 80% 뮤지컬에 달렸다"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이 15일 서울 중구 동숭동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뮤지컬은 노동집약 산업이다. 전체 제작비의 60%가 인건비에 투입된다. 하룻밤 공연에 150~200명의 생계가 걸려있는 셈이다."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이 호소했다. 2018년 선출 이후 임기의 절반가량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씨름해 왔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방침에 따라 좌석 간 두 칸 띄어앉기가 적용되면서 공연계는 파산 직전이라는 게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15일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위치한 한국뮤지컬협회 사무실에서 이 이사장을 만났다. 2.5단계 연장 발표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로 인터뷰 다음 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기간이 연장되면서 공연계 좌석 띄어앉기도 '두 칸'을 유지하는 상황이 됐다.

"집단적 목소리를 내려 한다. 코로나19로 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산업도 분명 있다. 공연계를 두고 집단 이기주의란 말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공연계 종사자의 생계를 말할 수밖에 없다. 공연 산업에도 핀셋형 지침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연계는 연간 뮤지컬 제작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을 1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에 따르면, 1000석 이상의 대형 뮤지컬 한 편에 참여하는 배우는 평균 30명, 스태프는 80~100명에 달한다. 무대에 세워지는 1년 평균 45~50편의 공연에 1만 명의 생계가 쏠린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해 2월부터 지금까지 중단되거나 취소된 공연이 전체 뮤지컬 작품의 63.1%에 이른다. 사실상 '셧다운' 상태다.

"뮤지컬 대형 제작사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작사의 편의를 봐주라는 것이 아니다. 이들 제작사들이 공연시장에 종사하는 80%가량의 예술인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 스태프들이 지난 1년간 직업을 잃고 개인 파산 신청하는 상황을 봐야 했다. 택배, 배달업 등으로 이직한 이들도 적지 않다. 정부에 이런 내용을 담은 호소문을 전달했다."

뮤지컬 종사자들이 '핀셋 방역 지침'을 호소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난해 공연계는 철저한 방역과 거리두기로 공연장 내 감염전파 0%를 기록했다. 좌석 띄어앉기가 없던 거리두기 1단계에서도 철저한 소독과 QR코드 확인, 마스크 착용과 불필요한 접촉 제한 등 방역 수칙을 지킨 덕분에 '방역 모범 업계'로도 꼽힌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유일하게 공연되는 나라로 뉴욕타임스, BBC 방송 등 세계적인 언론에서 방역 모범 사례로 기획 보도되기도 했다.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이 15일 "끝없이 호소한 결과 지난해 정부가 뮤지컬을 위한 코로나19 지원을 내놓는 결과를 얻었다"며 "뮤지컬을 보다 독립된 산업으로 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뮤지컬은 공연 비즈니스다. 공연장이 활성화돼야 한다. 전 세계 공연장이 멈춘 상황에서도 한국의 공연장은 움직였다. 한국의 뮤지컬은 전 세계 관객이 와서 볼 수 있는, 믿고 보는 시장이 됐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가능성을 보여준 뮤지컬에 대한 전략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 이사장은 구체적으로 '좌석 띄어앉기 지침 변경 및 보완'을 강조했다. 타 산업과 달리 전체 제작비의 60%가 인건비인 노동집약산업인 뮤지컬은 손익 분기점이 60%인 구조다. 공연장에 관객이 60% 이상 채워졌을 때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재 한 칸 띄어앉기(객석 점유율 약 50%)와 두 칸 띄어앉기(객석 점유율 약 30%)로는 공연을 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 이사장은 "공연을 할수록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라고 했다.

"관객은 공연을 구성하는 3요소 중 하나다. 관객 없이 공연은 완성될 수 없다. 그래서 공연 관객들은 스스로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책임감과 참여의식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동반자 외 거리두기' 지침을 통해 정서적 커뮤니티로 인식하고 있는 가족, 연인, 지인은 함께 보고, 좌석을 거리 둔 채 다른 관람객들의 좌석을 제공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

이 이사장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정부와 소통하는 당사자로 수없이 나섰다. 분명한 성과도 있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뮤지컬만을 위한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 뮤지컬을 독립적인 문화 산업 장르라고 호소하고 또 호소했던 결과다.

"뮤지컬은 오페라에서 출발해 미국으로 넘어가 산업화된 장르다. 그런데 한국에선 예전부터 '연극'으로 인식됐다. 그 영향으로 비즈니스, 구성 방식, 풍토가 전혀 다른데도 연극의 한 '과'로 포함된 현실이다. 지난해 처음 뮤지컬을 별도로 인정해줬다. 서울시 공연 회생 프로젝트 지원금을 통해 70단체에 1000만 원 씩 지원금이 나갔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뮤지컬 종사자 300명이 5개월간 180만 원의 생계비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국내 여성 공연전문기획자 1호다. 눈앞에 당면한 코로나19로 인한 공연계의 어려움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직을 '연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국내 대형 뮤지컬 제작사 10곳(PMC프러덕션, 신시컴퍼니, 클립서비스, 오디컴퍼니,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MK뮤지컬컴퍼니, CJ ENM, 에이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쇼노트)이 한국뮤지컬제작협회를 출범시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을 호소하는 공동 호소문을 내고, 서로 힘을 모으리고 한 데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뮤지컬협회가 있는 상황 속에서 힘이 분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유니언'은 언제든 환영"이라고 했다.

"대규모 제작사들은 뮤지컬이 순수 공연예술에 속해있는 상황 속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특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뮤지컬은 민간 차원에서 비즈니스 하기에 바빴고, 필요성을 크게 못 느낀 것도 사실이다. 다른 예술 영역은 시나리오, 감독, 배우 협회 등이 따로 있는데 뮤지컬은 뮤지컬협회 안에 제작, 창작, 배우, 스태프, 극장, 학술 등 여섯 개의 분과로 있었다. 한국뮤지컬협회라는 우산 아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집단들이 모여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대형 제작사 중심의 뮤지컬제작자협회 필요성이 제기됐고, 출범하게 됐다. 한국뮤지컬협회는 더 포괄적인 정책 마련과 업계 전체의 생태계 부분에서 영향을 할 예정이다. 실질적인 비즈니스 이익을 위한 조직은 얼마든지 세분돼도 좋다."

국내 여성 공연전문기획자 1호인 그의 계획이 궁금했다. 이 이사장은 1990년 동숭아트센터 기획부장을 시작으로 공연기획사 '컬티즌' 운영, 서울예술단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 뮤지컬과를 설치했고, 현재는 서울예술대학에서 예술경영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뮤지컬협회 9대 이사장은 '열정직'이다. 지난해 8월 임기가 끝났지만, 연임 요청은 일단 사양한 채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임기 연장' 중인 상황이다.

"평생 설립취지를 쓰고 산 것 같다. 불모지에서 총알받이 역할을 해왔다. 나를 움직이는 말은 '네가 필요해, 네가 중요해, 네가 아니면 안 돼'라는 말이다. 무모한 상황이라도 개척하고 도전하는 일은 나를 움직였다. 앞으로도 뮤지컬계가 필요로 한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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