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해당사자 설득, 정치적 지지를 위한 고민부터 시작해야"
"2003년 주5일제 시행 당시 스터디, 주4일제 도입을 위한 5대과제 마련할 것"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주 4일제'라는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 본격적인 담론을 시작했다.
시대전환과 영국 켄트대학교는 16일 오후 7시 공동으로 세미나 '왜 주 4일제인가?'를 열고 현재 장기간 근로의 문제점, 주 4일제의 필요성과 한국 도입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발표와 토론에는 정희정 영국 켄트 대학교 교수, 이승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 의원이 참여했다.
조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일자리 본질, 산업사회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우리가 필요한 재화, 물질, 서비스를 만드는 노동의 수요가 전체 노동인구의 100%가 되지 않는다"면서 "일부만 일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시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주 4일제 도입 시점이 도달했음을 시사했다.
이어 "주 4일제 도입에 앞서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고, 정치적으로도 지지를 얻어갈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한국은 최단 근로시간 1위인 덴마크보다도 1년에 13주 가량 일을 더한다"면서 "일 외에는 다른 것을 못하는 나라"라고 현실을 꼬집었다.
장시간 노동의 비효율성, 단점도 언급했다. 그는 "노동시간과 생산성은 반비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장기간 근로 국가일수록 경제성장도 더디다는 의미로 세계적으로 가장 적은 시간 일하는 덴마크의 생산성은 우리의 2배"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가 꼽은 장시간 노동에 따른 부작용은 △업무 효율성 하락 △남녀 모두 노동시장 참여 불가 △성 격차(Gender Gap) 및 성차별 극대화 △출산율 감소 △가정 충실도 감소(아버지 부재) △신체 및 정신건강 악화(높은 질병률 및 자살률) △환경문제(탄소배출 증가) 등이다.
대한민국은 이 모든 상황에 노출돼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손실이 크다. 실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미국은 매년 365조 원, 영국은 54조 원의 손실을 내고 있다. 또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다르면 성 격차와 성차별에 따른 세계적인 손실 규모는 1600억 달러에 이른다.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주 4일제'라는 것. 정 교수는 "이를 도입할 경우 노동생산성이 향상됨은 물론 회사에 대한 만족도와 충성도도 함께 올라갈 것"이라며 "이는 곧 이직률 감소,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를 반영한 창조적 산업 개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뉴질랜드 신탁 관리회사 페퍼추얼가디언은 2018년 11월 주 4일제를 도입한 이후 노동 생산성이 20% 개선됐으며,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향상(54%→78%)됐다.
이어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보다 활발한 시민사회, 참여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도입 방식에 대해서는 "노동시간은 줄이되 임금은 그대로 받는 것"이라며 "압축노동, 즉 동일한 일을 보다 짧은 시간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산업화 정신이 강하게 박혀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도입은 가능할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해당사자들을 어떻게 설득시킬지, 보완책은 무엇일지 등에 대한 과제가 산적해있다.
이에 대해 이 부위원장은 사전에 면밀히 검토해야 할 6가지 사안을 제시했다.
단순한 시간 단축이 아닌 노동시간의 배분, 양극화, 보이지 않는 시간 등도 논의해봐야 한다는 것.
그는 "특히 한국에서는 동일한 일을 보다 짧은 시간 내에 해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최저임금제에 따른 부작용과 같이 주 4일제도 오히려 효율성과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악용 가능성을 우려했다.
또 노동계의 반응도 귀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급이 낮은 대신 성과급, 수당 등이 높은 노동자의 경우 시간 단축이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기형적 임금 체계를 개선하는 논의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임금 노동자 뿐 아니라 하청 노동자, 기업주, 자영업자 등도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특히 하청 구조에 따른 도급 관계는 제한된 시간 내 업무를 끝내야 하기때문에 단순한 시간 단축은 하청업체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고 덧붙였다.
가려진 노동시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부위원장은 "시간 단축 논의 전에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돌봄노동, 가사노동, 특히 한국의 수많은 구직활동을 위한 준비시간 등 집계되지 않는 엄청난 노동시간들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장시간 근로의 원인이 실제 장시간 노동인지, 낮은 휴가 사용 비율인지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이 부위원장은 "후자도 상당히 많다고 본다"면서 "유럽처럼 한달씩 휴가를 가는 것에 대해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으며, 특히 병가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는 충분한 휴식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경우 한 명이 멀티태스킹(다중작업)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면서 "한 명이 쉴 때 대체가 가능한지, 일의 분배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도 구체화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코로나 확산이 이른바 퍼펙트스톰(여러 악재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해 파급력이 극대화되는 현상)를 야기하며 인간의 본연에 모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면서 "노동시간을 줄여나가고 가정, 삶의 시간, 정치활동 등 다중활동이 가능한 인간을 돌아보며 시간의 재설계를 통한 혁신, 사회적 전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이 같은 걸림돌들을 극복하고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한 방안, 시간단축과 생산성 연계에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조 의원은 "2003년 주 5일제 시행 당시에도 양대 노총이 격하게 반대했듯이 주 4일제 담론이 시작되면 반대가 많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도 "그럼에도 정치인으로서 첫 단추를 무엇으로 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어디서부터 출구를 찾아야 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며 "1단계로 우선 주 5일제 시행 이후 우리 기업이 결코 망하지 않았던 경험, 삶의 질이 개선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점을 지각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답했다.
이어 "노동시간을 줄여나가되, 임금 보전과 안식월 병행,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부모보험제도 등의 보완책부터 설계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면서 "다만, 정부는 다양한 일자리, 사회안전망 등의 카드를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생산성 향상에 대한 논의 자체가 추상적이지만, 생산성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노동시간과 함께 담론을 병행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근로 시간 단축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들이 있다"면서 "효율성 개선, 이직률 감소, 사회적 비용 감소 등은 물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만, 사회보장, 임금보장 등의 개혁과 인센티브 제공 등의 보완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조 의원은 "주 5일제가 시행되던 17년 전 당시 상황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어떤 교훈들을 적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서 "앞서 언급해주신 암초들을 정확히 인식하고, 주 4일제로 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5대 과제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