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한 토막] 빈정과 비위

입력 2020-11-1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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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라 편집부 교열팀 차장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有機體)와 같다. 사회관계 속에서 새로 만들어지고(생성), 형태가 변하거나 다른 단어와 결합하여 새롭게 생성되기도 한다(발전).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쓰임이 없어지면 사라지기도 한다(소멸). 언어가 생성, 발전, 소멸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언중의 사용 여부에 따른다. 한때 비표준어였지만 오랫동안 널리 쓰이면 표준어로 인정받기도 하고, 표준어라 하더라도 쓰이지 않으면 비표준어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널리 사용해도 표준어로서 인정받기에 곤란한 표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빈정’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대화 중 기분이 상했을 때 종종 “빈정 상했어” “빈정이 상하게 왜 그래” 등과 같은 표현을 쓴다. 여기서 ‘빈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빈정’ 뒤에 조사를 붙이거나 단독으로 쓰기 때문에 품사가 명사일 거라고 추측하는 이들이 많겠다. 그런데 ‘빈정’은 사전에 없는 말이다. 남을 은근히 비웃는 태도로 계속 놀리다는 의미의 동사 ‘빈정거리다’ ‘빈정대다’ ‘빈정빈정하다’ 등에서 보이는 표현이다. ‘빈정-’은 이들 동사의 실질적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으로, 독립적으로 쓰일 수 없는 어근일 뿐이다. ‘빈정 상하다’처럼 ‘빈정’이 단독으로 쓰일 수 없는 이유이다.

의미상으로도 어울리지 않는 결합이다. ‘빈정-’에는 남을 비웃으며 놀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상하다’는 상대의 어떤 행동이나 소식으로 인해 마음이 언짢아진다는 뜻이다. 놀리는 주체와 그로 인해 마음이 언짢아지는 주체가 서로 다른데 한 표현 안에 뒤섞어 쓰고 있는 것이다. ‘빈정 상하다’는 말이 의미상 호응관계가 어색한 까닭이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에 ‘비위 상하다’가 있다. 비위(脾胃)는 소화액을 분비하는 비장(脾臟)과 음식을 소화시키는 위장(胃臟)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음식물을 삭여 내는 능력을 뜻한다. 또 ‘아니꼽고 싫은 일을 당하여 견디는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위가 상하다’는 마음에 거슬려 아니꼽고 속이 상할 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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