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일, 삶, 배움] 한류 열풍에 가리워진 아이돌 노동인권

입력 2020-11-1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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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라는 용어는 1920년대 영국의 경제학자 세실 피구(Cecil Pigou)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론적 완성도나 우리 일상생활의 파급력은 미국 시카고 학파인 시어도어 슐츠(T.W. Schultz), 개리 베커(Gary. S. Becker), 제이콥 민서(Jacob Mincer) 등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들 중 베커는 인적자본 이론 확산 공로로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이론 중 인적자본 축적방식인 일반적 훈련과 기업특수적 훈련 이론이 있다. 전자는 교육생 또는 노동자가 배우고 학습하는 교육내용이 일반적인 것이어서 어떤 회사나 기업, 공장을 가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 후자는 특정 기업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다른 회사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커의 이론에 의하면 일반적 훈련은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비용은 개인이 부담하고 특출한 생산성을 가진 노동자와는 장기계약을 한다. 반면에 기업특수적 훈련은 해당 기업에서만 사용되는 기술을 배우기 때문에 교육비용은 기업이 부담한다. 이 이론은 대체로 인적자본 축적방식을 해석하는 데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딱 한 곳 예외가 있는데 그곳은 바로 우리나라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업계이다.

현재 아이돌을 대상으로 하는 연예산업계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연습생 양성부터 콘텐츠 제작, 홍보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기획사는 연습생을 음악만 하는 연예인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천후 만능 연예인으로 육성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춤, 노래 외에 연기, 외국어, 심지어 성형비용까지 한 명의 연예인을 키우기 위해 엄청난 투자비용이 소요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아이돌 양성에 필요한 교육훈련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가이다. 연예기획사 교육과 훈련내용은 모든 연예기획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 기술이다. 이론상 교육훈련비 주체는 연습생이 되어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이다.

연예기획사 입장에서 재능 있고 상품성 있는 교육생을 어린 나이에 선발하여 장기계약을 하는 것이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데 유리하다. 교육생 입장에서는 당장 데뷔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적이다. 하지만 데뷔하고 난 후 연예기획사의 투자비용 회수를 위한 활동에 나설 경우 장기계약은 부담스럽고 적은 이윤배분은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가 2009년 ‘동방신기’ 일부 멤버들이 ‘13년 계약기간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 제기와 2011년 초 걸그룹 ‘카라’가 손해배상을 물고서라도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선언한 일이다.

두 사건이 발생한 이후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든 표준 계약서에는 교육훈련 비용 회계를 연습생별로 만들어야 하고 교육생을 퇴출시킬 때는 합리적 평가를 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다. 그러나 연습생에게 소요되는 교육비용 원가가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도 없고, 그만두고 싶어도 수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 부담 때문에 그만두지도 못하는 등 실질적인 근로조건을 개선시키지 못하였다.

오늘날 연예기획사는 일종의 연예인 지망생의 ‘태릉선수촌’처럼 종합예술인을 육성하는 사관학교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 영국, 유럽 등의 연예산업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스템이다. 이른 시일 내에 외국과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 선택과 집중, 그리고 산업화, 상업화 전략에 바탕을 둔 것이다. 복수의 외국 언론이 지적하듯이, 이러한 인력양성 시스템에 근간을 둔 연예산업 유지를 위해 발생하는, 있어서는 안 될 연습생에 대한 인권 경시와 학대행위를 정부는 더 이상 방관해선 안 된다. 연계기획사도 연습생을 직접 교육시키고자 한다면 공식 훈련기관으로 등록해 활동하는 것이 정상이다. 상업적 성공전략으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것에 취해 있는 동안 국가와 사회가 청소년, 청년 연예산업 노동인권 사각지대를 너무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닌지 톺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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