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2. 바이든 취임 후 대서양 관계

입력 2020-11-11 17:37수정 2020-12-0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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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트럼프가 훼손한 파트너십 복원 나설 것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팟캐스트 ‘안쌤의유로톡’ 제작진행자,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서구를 확장하고 업그레이드해야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미국 민주당의 카터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는 21세기에 전개되는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을 전망하며 미국 지도부에 이렇게 조언했다.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나라들을 ‘서구(The West)’라 규정한 그는 미국이 가치 공동체인 서구를 확장하고 동맹관계 등도 업그레이드할 것을 주문했다. 국제정치의 큰 판을 짜는 지정학 대가의 소중한 조언이다. 하지만 2017년 1월 취임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유럽연합(EU)과 통상분쟁을 유발했고,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늘리지 않으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없애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세계무역기구(WTO)를 사실상 기능 정지시켰고 기존 국제 규범의 구속을 받지 않고 트럼프가 원하는 양자의 틀로 해결해왔다.

내년 1월에 취임할 민주당의 바이든 행정부는 다자주의와 동맹을 중시한다. 그는 “미국을 세계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겠다”며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복귀를 선언했다. 우리가 보통 ‘서구’라 하면 미국과 ‘유럽’을 연상한다. 대서양을 맞대고 있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연계는 ‘대서양 관계’로 불리며 2차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 핵심축의 하나였다. 바이든 취임 후 트럼프가 상당 부분 파괴한 대서양 관계가 어느 정도 복원되고 양자 간 갈등이 풀릴 수 있을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2차대전 후 전개된 양자관계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미국, 유럽통합 과정에서 핵심 역할 수행한 ‘유럽 세력’

2차대전 후 서유럽 국가들은 통합을 시작했다. 민족주의의 고장이던 유럽이 두 번의 ‘내전’인 양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후 프랑스와 독일 등 일부 서유럽 국가들은 국가주권을 일부 양보하여 유럽의 건설에 돌입했다.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았던 독일과 프랑스 간의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전략물자이던 석탄과 철강의 공동관리부터 시작된 통합이 점차 경제 분야와 정치·외교 분야까지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압도적인 역외국가로 역사적인 요인 때문에 ‘유럽 세력’이 되었다.

1949년 4월에 창설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가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은 이전까지 외국에 군을 상시 주둔한 예가 없었다. 하지만 세계의 공산화를 목표로 하는 소련이라는 주적 앞에서 서유럽은 장기판의 졸과 같았다. 서유럽의 안보보장 없이 미국의 안보도 없는 셈이었다. 나토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이스메이(Ismay)경은 “미국을 유럽에 불러들이고, 러시아를 유럽에서 쫓아내고, 독일의 힘을 빼는 것”을 나토의 목표라 규정했다. 미국은 나토라는 집단안보체제를 만들어 서유럽의 안보를 보장했고 서유럽이 통합해야 소련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며 유럽의 통합을 격려하고 지속적으로 지지해왔다.

냉전 후 정상회담 정례화, 글로벌 이슈 상시 논의

1989년 11월 9일 자정쯤 갑자기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냉전의 상징이던 장벽의 붕괴로 기존의 안보질서가 급변할 것을 직감한 미국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나토의 틀 안에서 독일 통일 과정을 지지하면서 유럽연합(당시는 유럽공동체, European Communities, EC)과의 관계를 제도화하자고 제안했고 성사됐다.

‘신대서양 관계 어젠다(New Transatlantic Agenda: NTA, 1995년 말 서명)’는 환경과 테러리즘, 국제범죄와 같은 글로벌 도전에 미국과 EU가 공동으로 대응하고 세계 무역의 확대와 긴밀한 경제관계의 촉진, 문화 및 교육 분야에서 양자 간의 간극을 메울 것을 명시했다. 그리고 1년에 2회 개최되는 정상회의를 준비하고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고위그룹도 신설했다. 4년 전에 체결된 대서양 관계 선언에 좀 더 뼈대를 붙였다.

이처럼 양자는 탈냉전 시기에 복잡한 국제사회의 공동이슈를 논의하고 협의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2차대전 후 유럽이 미국의 후원을 받던 일방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양자가 거의 대등한 국제 정치경제의 행위자로서 협력하게 됐다. 유럽통합이 지속되면서 유럽이 국제정치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냉전이 붕괴된 후 국제사회의 역학관계도 변했다. 유럽에서는 소련이라는 주적의 위협이 상당히 사라지게 되었고 소련의 압제에 시달리던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복귀하게 됐다. 통합 초기 6개국에 불과했던 유럽연합은 계속해 회원국을 늘려 현재 27개국이다. 비록 영국이 탈퇴했지만 EU는 아직도 인구 4억5000만 명 정도의 세계 최대 단일시장이다. 경제 규모에서는 미국을 앞서게 되었고 국제정치에서 이념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양자의 구조적인 갈등 요인은 커졌다.

▲2018년 7월 25일 백악관에서 양자회담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장 클로드 융커 당시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조 바이든의 미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과 유럽간의 대서양 관계에도 어느 정도 훈풍이 예상된다. 워싱턴/EPA연합뉴스

美, 나토 예산 3분의 2 부담…안보는 여전히 일방적 관계

70년이 넘는 양자 관계의 역사 속에서 대서양 관계는 하나의 역할모델이 되었다. 오바마 행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은 ‘아시아로의 복귀’를 선언하며 미국과 태평양 국가들이 체결한 파트너십의 모델로 대서양 관계를 지적했다.

그렇지만 대서양 관계의 경우 안보는 아직도 일방적이다. 미국이 나토 예산 3분의 2를 부담하고 있어 ‘유럽’은 여전히 안보를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프랑스와 함께 유럽의 군사강국이던 영국이 EU에서 탈퇴함에 따라 EU도 자체적인 안보 역량을 강화해 왔으나 아직도 목표와 현실 간의 괴리가 크다. EU 회원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나토 회원국의 합의)하는 나토 회원국은 그리스와 폴란드, 발트 3국 등에 불과하다.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은 1.38% 정도이다. 이 문제로 트럼프처럼 공개적으로 독일을 모욕하지는 않겠지만 바이든 행정부도 EU 회원국들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방비를 증액하라고 압력을 넣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훼손한 대서양 관계는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복원이 예상된다. 보통 신정부가 들어서면 최소 6개월 정도 정책검토(policy review) 과정을 거친다. 미국이 지난해 말에 무력화한 WTO 상소심의 제 기능 찾기도 이런 절차를 거쳐 이뤄질 듯하다. 또 유럽이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 합의에 이른 이란의 비핵화 협정에도 미국은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대중국 정책에서는 갈등 요인이 남아 있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EU는 미국과 공동전선 형성 불가피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막론하고 미국의 대중국 강경정책은 초당적인 합의가 돼 있다. 새로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는 EU와 협의해 중국에 국제 규범의 수용을 요구하는 식으로 공동전선을 펼 듯하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한 후 미국, 유럽과 같은 거대시장에 수출을 늘려 급속한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이나 중국 기업 인수는 아직도 여러 가지 규제에 묶여 있다.

EU는 지난해 중국을 ‘체제적 경쟁자’로 규정했고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서 제한적인 협력만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의 대중국 강경정책에 공감하지만 EU는 그래도 미국과 차별되는 봉쇄와 포용을 적절히 조화시킨 독자적인 중국 정책을 시행해 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냉전시기 공동의 주적인 소련에 맞서 미국과 EU는 협력을 지속할 수 있었다. 21세기 중국의 부상이라는 더 어렵고 큰 도전 앞에서 양자는 협력을 강화하겠지만 구조적인 갈등 요인은 상존할 것이다.

지난 4년간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서양에는 높은 파도가 휘몰아쳤다. 이제 파도는 당분간만이라도 좀 잠잠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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