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20%까지 임대 허용했던 시프트, SH 애물단지로 임대주택 별도회계로 공기업 부담 줄여야
서울시는 2005년 임대주택 고급화를 선언했다. 전용면적 40㎡ 이하 소형 임대주택 공급을 중단하는 대신 전용 49㎡ 이상 중형 주택 위주로 공급하기로 했다. 임대주택 슬럼화(化)를 막고 중산층이나 부유층까지 입주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소형 임대주택 건설 중단은 철회됐지만 중형 임대주택은 장기전세 주택, 이른바 ‘시프트’란 이름으로 건설됐다. 민간 전세 시세보다 20% 이상 싼값에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지난해까지 시프트 3만781가구를 공급했는데 중형이라 할 수 있는 전용 84㎡형과 114㎡형은 각각 8352가구(27.1%), 2533가구(8.2%) 임대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시프트에 관해선 ‘실패작’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SH는 2016년부터 전용 85㎡가 넘는 중형 임대주택 공급을 사실상 중단했다. 같은 장기 전세라도 소형 임대주택에만 집중하고 있다.시프트가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던 지점은 공공성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공공 재원을 저소득층이나 주거 취약 계층에 우선 써야 하는데 이를 중산층 등에 분산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프트 건설 초기에는 소득 상한 기준이 느슨해 민간에서 전셋집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계층에게까지 임대주택 문호를 열어준다는 지적도 받았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주거안정연구센터장은 “과거 시프트는 소득 9분위(소득 상위 20%) 계층에까지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허용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시프트로 SH 재정 여건이 악화하면서 이 같은 비판은 더 힘을 얻었다. 2015~2019년 SH가 임대주택 사업에서 본 손실 1조8090억 원 가운데 9822억 원(54.2%)가 시프트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SH 내부에서도 일찍부터 시프트 주택을 매각하거나 분양 전환하고 주거 약자 지원에 집중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 교수는 “중산층용이 아닌 중산층도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조성해야 한다”며 “현재도 임대주택 예산이 경제 규모에 비해 적은데 기존에 취약계층용으로 계획됐던 재원을 뺏는 식으로 지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득 분위별로 공급 비율을 정해 다양한 계층이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진 센터장은 “소득 기준은 지금보다 완화하되 자산 기준은 엄격히 적용해 금수저 임대주택 논란을 예방할 필요가 있고”고 했다.
임대주택 확대 부담을 지게 될 공기업에 대한 지원 방안도 과제다. 가뜩이나 공공주택 노후화로 유지·개수비 지출이 늘어나는데 건설 부담까지 늘어날 판이어서다. 재정 건전성을 중심으로 해마다 경영평가를 받는 공기업으로선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박효주 참여연대 간사는 “공공임대주택 재정은 별도 회계로 편성해 공기업이 경영평가에 불이익을 받지 않고 주택 공급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도 “경제 규모에 비해 임대주택 건설 예산이 적다”며 “주택도시기금 융자가 아닌 출자를 통해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임대인으로 공공성 갖추도록 포용해야
일부 전문가는 민간 임대 시장과의 조화도 주문했다. 공공임대주택만으로 중산층 주택 임대 수요를 모두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 전·월세 시장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임대료나 임대 기간 등에서 정부 기준을 따르는 민간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을 줬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같은 혜택이 다주택 수요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혜택과 그 대상을 많이 축소했다. 진 센터장은 “전·월세 신고제로 임대차 시장이 투명해지는 만큼 민간에서도 공공성을 갖춘 임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포용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