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욱 산업부 기자
"고인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으셨나요?"
"뭐 그렇진 않고요, 재계의 상징적인 분이라 조문했죠."
이 말을 남기곤 대기 중인 고급 세단을 타고 자리를 뜬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를 방문한 정ㆍ관계 인사 대부분이 그랬다.
유족들은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며 정중히 조문을 거절했지만, 빈소에는 전ㆍ현직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인은 물론 유족과도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이들이 많았다.
한때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정치인은 건재함을 과시하듯 자신의 사람을 좌우로 대동해 빈소를 찾았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 경제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고, 한 광역시장은 빈소 사진을 촬영해 SNS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불청객'이 따로 없었다.
정작 고인과 관계가 깊던 삼성 임원, 기업인들은 말을 아끼거나 애통함이 담긴 짧은 말만을 남긴 채 빈소를 떠났다.
유족들은 그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를 조용히 기리고 싶어 했지만, 누군가에게 빈소는 그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훌륭한 '무대'였다. 가뜩이나 정부, 국회 눈치를 보며 제 목소리를 못 내는 기업인들이 고인을 제대로 추모할 기회마저 뺏긴 것처럼 보인 건 나뿐이었을까.
사실 불청객은 또 있었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유족의 조용한 작별을 방해한 불청객이다.
유족들의 동선을 좇고, 그들의 슬퍼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불청객'이라 칭한 인사들이 '귀에 박히는' 말을 남기면 내심 좋아하며 기사에 옮겼다.
고인의 죽음을 기록하는 건 분명 필요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일부 보도는 윤리적이지 않았다고 본다. 아직 미성년자인 이 부회장 자녀의 사진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됐고, 신변잡기식 기사도 쏟아졌다.
고인의 운구차가 지나는 길목에 국화꽃을 들고 서서 조용히 애도하는 삼성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진정한 추모란 무엇일까. 모든 '불청객'들이 고민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