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공방 장기화 가능성…양사 합의 여지도 열어놔
1년 반 동안 지루하게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이차전지(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이 임박했다.
이달 초 예정됐던 최종 판결 일정이 연기되면서 양사의 극적인 합의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결국 평행선을 좁히지 못하고 최종 판결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ITC는 26일(현지시간) LG화학이 지난해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앞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인력을 빼내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했으며, ITC는 LG화학의 주장을 받아들여 올해 2월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양사가 모두 자사에 유리한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가운데 ITC의 최종 판결 시나리오는 크게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수정 지시 △공익성 추가 검토 등 세 가지다.
우선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수 있다.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해 ITC가 조기 패소 판결을 한 번도 뒤집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유력한 시나리오이자, LG화학이 원하는 안이기도 하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모듈·팩의 미국 내 수입금지 조처가 내려지며 사실상 현지 사업은 멈춰 서게 된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ITC의 최종 결정에 따른 수입금지 조치 등을 내릴지, 혹은 거부권(Veto·비토)을 행사할지 결정한다. 대통령 심의 기간이 끝난 후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연방항소법원(CAFC)에 항소할 수 있지만, 항소 기간에 수입 금지 조치가 계속된다.
ITC가 ‘수정(Remand)’ 지시를 내리는 경우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사건을 들여다보겠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LG화학에 유리하게 진행됐던 소송의 판이 완전히 뒤집히게 되는 셈이다.
이 경우에는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사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또, LG화학과의 소송 테이블에서 기존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마지막으로 ITC가 조기 패소 판결을 유지하되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공익성을 추가로 검토하겠다는 결정도 가능하다. ITC가 공청회(Public Hearing)를 열고 SK이노베이션이 미국 내에서 배터리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과 부합한다는 의견이 나오면 수입금지 조치는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조(兆) 단위 투자를 단행,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주 정부와 시(市) 등이 5월 ITC에 SK이노베이션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7월에는 완성차 업체인 포드와 폭스바겐이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하더라도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탄원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최종판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항소의 가능성이 있어 이 법정 싸움은 장기화할 수도 있다.
다만,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소송을 이어가는 것이 양사에 모두 부담인 만큼 극적인 합의 가능성도 있다. 양사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뿐만 아니라 특허침해 소송도 진행 중이어서 소송의 장기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모두 합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LG화학은 “양사 간 합의는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라면서도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주주와 투자자가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배터리 산업 생태계는 갈등보다 협력을 통한 동반 성장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며, 최근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대표 역시 소송에 대해 “배터리 산업 발전 위해서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며 “(협상은) 열심히 하고 있다고만 이해해달라”고 말해 양사의 협상 여지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