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비밀] ② 한림원은 비밀결사대?

입력 2020-10-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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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선정하는 스웨덴 학술원, 종신직에 비밀투표
‘남성 중심 문화’ 비판 나오는 등 가장 논란 많아
소수 위원만 노벨상 수상자 선정 권한 지적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5일(현지시간) 카롤린스카연구소의 노벨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스톡홀름/AP뉴시스
매년 가을이면 노벨상 수상자와 수상 이유에 전 세계의 높은 관심이 몰린다. 하지만 정작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벨위원회와 한림원은 상대적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다. 비밀투표와 소수 구성원, 끊이지 않는 논란 등 노벨상 수상기관은 비밀결사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벨상은 분야마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관이 다르다. 물리·화학·경제학상은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선정하고, 생리의학상은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결정한다. 문학상과 평화상은 스웨덴 학술원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각각 선정한다.

이 중 스웨덴 학술원은 수상 기관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고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학술원의 위원은 모두 종신직으로, 비밀투표를 통해 신입을 선발한다. 비밀투표 이후에는 스웨덴 국왕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2018년 스캔들로 노벨 문학상 취소 파문

2018년에는 위원 개인 윤리 문제로 파행을 겪다가 세계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카타리나 프로스텐손 위원의 남편이자 사진작가인 장 클로드 아르노가 성폭행 혐의로 당국의 수사를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프로스텐손 위원이 남편과 함께 학술원의 돈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는 전년도 노벨 문학상의 수상 후보 명단을 빼돌린 혐의도 받게 됐다.

결국 프로스텐손 위원과 함께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당시 스웨덴 여성 단체들은 정작 남성 위원들이 물러나야 했는데 다니우스 총장이 희생양이 됐다며 반발했다. 1996년부터 아르노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편지가 접수됐으나 남성 중심의 학술원이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사라 스트리드베르크 위원은 다니우스 사무총장의 사퇴가 부당하다며 스스로 위원직에서 내려오기까지 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과학 분야 수상자 결정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물리와 화학, 의학, 수학 등 10개 학부로 나뉘어 있으며 450명의 스웨덴 국적 위원과 170명의 외국 국적 위원을 두고 있다. 왕립과학원의 회원은 보통 종신직이지만, 65세가 되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대신 의견을 내고 참여할 권리가 유지된다. 공석이 생기면 같은 학부 회원이 후보자를 추천한다. 그 후 나이와 성별, 지역분포 등을 고려하여 학부별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서 왕립과학원은 별도로 노벨위원회를 꾸린다. 올해 화학상과 물리학상의 노벨위원회 회원 수는 각각 6명으로, 3년간 위원직을 유지한다. 원칙적으로는 국적에 상관없이 왕립과학원의 회원이면 누구나 노벨위원회에 참가할 수 있지만, 보통 스웨덴 국적의 회원이 노벨위원회에 참가한다.

다만 노벨 위원회가 최종 수상자 결정 권한을 쥐는 것은 아니다. 노벨위원회가 추천받은 교수와 연구진을 검토한 뒤 후보를 지명하면 수상자를 선정하는 일은 왕립과학원 전체 회원이 참여한다.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노벨총회(Nobel Assembly)는 1984년까지 모든 교수진과 연구진이 참여했지만, 지금은 회원 수를 5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5명만이 노벨위원회(Nobel Committee)에 참가해 생리의학상의 후보자를 지명한다. 위원회 위원들은 3년 임기로 선출되며, 연임을 통해 최대 6년까지 재임할 수 있다.

노벨평화상 선정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정치적 목적으로 상 이용 비판

노벨평화상을 선정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노르웨이 국회가 임명한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의 임기는 6년으로 재선될 수 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다른 노벨위원회와 달리 수상 후보 심사 작업부터 최종결정권까지 갖는다.

다만 국회의원을 포함하여 정부관리는 위원이 될 수 없고, 철저히 독립적인 기구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평화상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1973년 미국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다. 그는 베트남전을 종전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레득토 당시 베트남 수상은 평화상을 거부하며 “내 조국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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