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K푸드 대표주자 라면, '자가격리 박스' 속 비상식량으로 등극

입력 2020-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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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이죽부터 저칼로리 건면까지 발전한 '대한면국' 60년
기생충 '짜파구리'로 글로벌 입맛까지 사로잡아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자가격리자를 위해 제작한 긴급구호 세트에 라면이 즉석밥, 생수 등과 함께 담겨 있다. 이처럼 ‘한국인의 소울푸드’ 라면은 위드 코로나 시대 생존 수단 중 하나가 됐다. 상반기 국내 라면 시장은 전년 대비 7.2% 성장한 약 1조13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는 반기 기준 역대 최대에 해당하는 수치다. (연합뉴스)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수식어는 식상하다. 그렇다. 라면 얘기다. 2019년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4.6개로 세계 1위다. 평균 4일마다 한 끼는 라면으로 때우는 셈이다. 뒤를 잇는 베트남(53.9개)과 네팔(53.0개) 등과 비교해 압도적인 격차다. 대한민국이 ‘라면 공화국’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한‘면’국의 라면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에 이어 전세계에서 퍼지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세계인의 비상식량으로 등극하게 됐다. 처음 먹는 사람도 설명서만 보면 10분 안에 뚝딱 만들어낸다. 보관하기도 쉽다. 매운맛부터 김치맛, 된장맛, 짜장 맛 등 고르는 재미가 있다. 인지도와 편리함에 다양한 맛까지 갖춘 K라면은 코로나 시대 K푸드 열풍의 선봉장을 넘어 세계인의 소울푸드 자리까지 꿰찰 기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농심 신춘호 회장의 지론을 세계 시장에서 실현한 K라면 신화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발언과 맥이 닿아 있다.

▲1963년 국내 최초로 라면을 생산한 전중윤(맨 왼쪽) 삼양식품 명예회장이 오쿠이(왼쪽 두 번째) 묘조식품 사장과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양식품)

6·25 전쟁 후 꿀꿀이죽서 탄생한 ‘한국 라면’
국내 라면의 역사는 이른바 ‘꿀꿀이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꿀꿀이죽이라는 이름은 미군 부대에서 남긴 반찬과 음식 찌꺼기를 모아 한데 넣고 끓여 시각적으로 “돼지나 먹을 법하다”는 의미에서 붙었다.

삼양식품 창업자인 고(故) 전중윤 회장은 6·25 전쟁이 끝난 후 굶주린 사람들의 배를 채우던 꿀꿀이죽을 생각하며 라면 개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앞서 일본에서 라면을 맛본 바 있던 전 회장은 라면을 보급해 국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일본의 묘조 식품에서 라면 기술을 도입해 1963년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생산한다.

라면은 생소한 모양과 맛 때문에 출시 초반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가 1965년부터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에 힘입어 판매량이 급증했다. 삼양라면은 판매 2년 만에 월 100만 개씩 팔리는 히트 상품으로 부상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라면을 맛본 후 “고춧가루와 양념을 더 넣어 맵고 짜게 만들라”고 조언하는 등 애정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농심은 1986년 ‘신라면’ 출시 후 1991년부터 국내 라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986년 농심 기술개발 연구소 면 개발연구실 모습. (연합뉴스)

이 무렵 현재 라면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농심도 라면 사업에 뛰어든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1965년 자본금 500만 원으로 서울 대방동에서 라면 생산을 시작했다. ‘제품 개발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으로 신제품 개발에 몰두한 신 회장은 닭고기 육수가 기본이었던 라면 시장에 쇠고기 라면을 출시, 변화를 일으킨다. 이후 80년대 들어 ‘너구리’, ‘안성탕면’, ‘신라면’ 등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베스트 셀러 제품을 연달아 선보이며 ‘라면대장’ 농심의 초석을 닦았다.

▲신라면 제품 출시 초기 디자인. (사진제공=농심)

세계 전역에서 맛볼 수 있는 ‘K라면’이 되기까지

올해 1분기 ‘코로나 특수’를 누린 라면업계는 2분기에도 약진을 거듭해 상반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은 올 상반기 각각 1조 3557억 원, 1조 2864억 원, 330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15.5%, 10.5%, 30% 늘어난 수치다. 영업이익 역시 전년 대비 각각 163.8%, 21.4%, 55.7% 증가한 1050억 원, 1101억 원, 562억 원을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비상식량의 대표격인 라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분이다.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그러나 이러한 영광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농심은 1990년대 후반 중국 진출 시 신라면 등 인기 제품의 맛과 규격을 한국과 똑같이 출시했다. 기대와 달리 현지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중국에서는 봉지라면을 컵라면 먹듯 데워먹는 이른바 ‘파오미엔’ 문화가 자리잡고 있어 냄비에 끓여먹는 한국식 라면은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다.

▲중국 공략을 위해 시작한 ‘농심신라면배 세계 바둑최강전’. 2009년 이세돌(오른쪽) 9단의 대국 모습. (연합뉴스)

어려움 속에서 농심을 버티게 한 원동력은 다름아닌 ‘뚝심’이었다. 제품 판매에 어려움이 계속됐지만 농심은 ‘한국식’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신 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농심은 ‘중국인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진출 첫해인 1999년 바둑 국가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을 창설했다. 맛은 ‘한국식’을, 마케팅은 ‘현지화’를 키워드로 한 것이다. 농심의 지난해 중국 매출액은 2억7000만 달러로 진출 첫해 700만 달러 대비 40배가량 늘어났다. 올해 중국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20% 이상 높은 3억2800만 달러(약 4000억 원)로 잡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짜파구리'. (기생충 스틸컷)

최근엔 K영화의 덕을 톡톡히 봤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에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등장해 세계적으로 짜파게티와 너구리 수요가 증가한 것. 농심은 짜파구리 용기면 제품을 출시하고 자사 유튜브 채널에 짜파구리 조리법을 11개 언어로 소개하며 기생충 신드롬을 200%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 뉴델리 한 쇼핑몰에서 판촉 행사중인 채식주의자용 오뚜기 진라면. (연합뉴스)

‘건강한 라면’의 시대 열어 새롭게 도약

K라면의 글로벌 인지도가 높아지는 대신 국내 시장의 ‘성장 정체’는 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 HMR(가정간편식)이라는 대체재가 생기면서 국내 시장은 수년간 2조 원 규모에 머물러 있다.

“라면은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소비자 사이에서 확산한 점도 수요 확대에 발목을 잡는다. 건강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업계는 ‘건면’을 키워드로 활로를 찾고 있다.

▲농심은 지난해 선보인 신라면건면을 그대로 용기면에 담은 ‘신라면건면사발’을 올해 5월 출시했다. (사진제공=농심)
농심은 최근 신라면건면에 간편함을 더한 용기면 ‘신라면건면 사발’을 출시했다. 농심이 지난해 2월 출시한 ‘신라면 건면’은 기름에 튀기지 않아 깔끔한 맛과 낮은 열량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 건면 대중화의 새 장을 연 제품이다. 건면은 기름에 튀기지 않아 기존 면보다 깔끔하고 가볍다. 칼로리는 일반 라면의 약 70% 수준인 350 Kcal다.

건면 판매가 호조를 보이자 농심은 전용 시설을 구축해 생산량을 2배로 늘렸고 ‘농심쌀국수’와 ‘짜왕건면’을 연이어 출시하며 라인업을 강화했다. 발빠르게 움직인 결과 신라면 건면은 출시 이래로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판매량 1억 개를 돌파했다.

삼양식품도 지난해 대표제품인 불닭볶음면에 건면을 적용한 ‘라이트 불닭볶음면’을 내놨다. 이 제품은 기름에 튀기지 않아 열량이 불닭볶음면의 70% 수준인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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