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으로 번진 전세난] 전세 품귀에 연일 '신고가'…속타는 세입자

입력 2020-09-23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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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도권 전세값 47주 연속 상승 행진
전세 물량 두달 전보다 60% 감소

울산 북구에 사는 A씨는 요새 걱정이 많다. 내년 봄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있는데 타지에 사는 집주인이 자신이 A씨 전셋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퇴거를 요구하면 A씨는 임대차계약 갱신 청구권도 못 쓰고 만기와 함께 집을 비워줘야 한다. 주변 지역에서 전셋집을 구하려 했지만 물건이 씨가 마른 데다 나와 있는 매물도 몇 달 전보다 수천만 원씩은 올랐다. A씨는 인근 도시로 나가 살아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전세난이 서울ㆍ수도권을 넘어 비(非)수도권까지 덮치고 있다.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제ㆍ전월세 상한제) 시행 등 전세 규제 강화와 주택 공급 부족이 겹치면서 지방에선 전셋집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수급이 불안해지면서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넘보는 아파트도 늘고 있다.


임대차법 시행 후 전세 품귀…법 개정 전보다 8만 가구 줄어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22일 기준 전국의 거래 가능한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4668가구다. 임대차 2법 개정 전인 두 달 전(11만7323가구)과 비교하면 매물이 70% 넘게 줄었다. 전세 품귀현상은 지역을 막론한다. 수도권에선 75%, 비수도권은 60% 전세 매물이 감소했다. 비수도권에선 울산(-74.4%)과 세종(-69.4%), 전북(-68.0%), 충북(-66.1%) 순으로 전세 절벽 현상이 심했다.

물건이 귀해지니 자연히 가격도 상승세다. 최근 들어선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는 단지도 늘고 있다. 울산 북구 복산동 '번영로 효성 해링턴플레이스 1차' 전용면적 71㎡형은 1일 3억2000만 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같은 면적 기준 이 아파트가 준공된 후 가장 높은 전세가다. 그전까지는 올 1월 2억7000만 원에 나간 게 최고가였다. 세종 고운동 가락마을 15단지 전용 84㎡형도 반년도 안 돼 전세 신고가가 경신됐다. 20일 이 아파트에선 직전 최고가(2억 원ㆍ4월)보다 1억 원 높은 3억 원에 전셋집이 나갔다.


전세 규제 강화에 신규 공급 부족까지 겹쳐

전세난이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건 임대차법 개정 영향이 크다. 2+2년 계약갱신 청구권제, 5% 전ㆍ월세 증액 상한제 도입으로 전세시장 규제가 강해지면서 전세를 월세로 돌리거나 애초에 전셋값을 높게 부르는 집주인이 늘고 있어서다. 전세시장이 혼란해지면서 세입자는 새로 집을 구하기보다는 계약 갱신을 택하고, 새로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생기고 있다.

비수도권은 서울이나 경기ㆍ인천에 비해 주택 공급이 활발하지 못하다 보니 전세난이 더 가중되고 있다. 세종만 해도 1년 넘게 새 아파트 분양이 멈춰 있다. 광역시 지역에선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으로 주택 공급량을 늘리려는 수요는 있지만 기존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전셋집 찾기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세종 시내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 (사진 제공=국토교통부)

다주택자ㆍ법인을 겨냥한 정부 규제도 전세시장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간 다주택자와 법인은 매매값과 전셋값 차이가 작은 비수도권 아파트를 투자 대상으로 선호했다. 적은 자본으로도 구매할 수 있어서다. 이 같은 투자 수요가 비수도권 전세 공급에 한몫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이같은 갭투자자들을 겨냥해 세금 부담을 늘리고 감시를 강화하면서 다주택자와 법인이 비수도권부터 아파트를 처분하고 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군 오창읍 O공인 관계자는 "다주택자 매물을 현지인이 받고 있다"며 "당연히 세입자를 내보내거나 전셋값을 올리고 싶어하지 않겠냐"고 했다.


매매-전세 차이가 500만 원… '깡통전세' 우려 고개

전셋값이 매매가격에 육박하는 곳도 늘고 있다. 매매가격에 비해 전셋값이 급격하게 올라서다.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서청주 파크자이' 전용 60㎡형은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98%에 이른다. 매매값이 2억5500만 원인데 전셋값이 2억5000만 원으로 500만 원 차이밖에 안 난다.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성동 '천안 레이크타운 3차 푸르지오' 전용 74㎡형도 전세가율이 97.3%(매매가 3억3916만 원ㆍ전셋값 3억3000만 원)로 매매가격과 전셋값이 딱 붙었다.

시장에선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전셋값 안정이 힘들다고 우려한다. 전셋값이 매매값을 추월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전세'가 될 수 있어서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전셋값 상승, 전세 매물 부족이 수급 구조 불안에서 비롯된 만큼 단기간에 상황이 바뀌기는 어렵다"며 "가을 이사철도 시작된 만큼 한동안은 지방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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