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념사 엑스레이(X-ray)

입력 2020-09-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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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연 금융부 기자

“아.”

올여름 갑자기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왼쪽 팔을 올리기만 해도 신음소리가 나왔다. 어깨가 아프다는 것은 굉장히 골치 아픈 일이다. 생각보다 일상생활에서 팔을 뒤로 넘기는 일이 많다. 가령 샤워타월로 등을 문지르거나 단추 없는 니트를 머리 위로 벗을 때, 토익 시험장에서 OMR답안지를 매우 빠르고 정확하게 뒤 수험자에게 넘겨줘야 할 때. 갑자기 찾아오는 통증은 사람을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설명하는 것부터가 성가시다. 분명히 어깨가 아픈데 고통은 목, 어깨, 팔 전체로 찾아와 정확히 한 군데를 콕 집어 말하기가 힘들다. 가장 화날 때는 의사가 고통의 근원지를 찾지 못하는 경우다. 의사들은 열에 아홉은 나 같은 환자라는 듯 ‘검은 것은 바탕이요 흰 것은 뼈’인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필름상으로는 이상이 없으니 평소 바른 자세를 꾸준히 유지하세요”라며 단숨에 진료를 끝낸다.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청년의 날 기념사에 ‘공정’이 37번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며,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다. 채용, 교육, 병역, 사회, 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체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잇따라 보도된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특혜 논란을 의식한 담화문이었다. 공정에 예민한 청년들을 달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애매모호한 기념사에 청년들은 냉담한 반응이었다. 공정 때문에 화가 난 이들을 달래기 위해서는 고통의 근원지를 정확히 집어줬어야 했다. 촛불정권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엄마 찬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빠 찬스를 묵인한 것은 잘못된 일이며, 특혜를 지시한 자와 받은 자 모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문 대통령의 단호한 진료가 청년들의 분노를 잠재울 처방전이었던 것이다.

재작년부터 보도된 금융권 채용비리에 이어 올여름 나이스(NICE)그룹 부회장 아들의 황제 병사 논란, 그리고 추미애 장관 아들의 카투사 무단이탈 논란까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권의 근본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 문서상으로는 특혜에 가담한 이들의 불법성을 찾아내기는 힘들다. 그들 스스로가 꾸준히 도덕성과 윤리에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정형외과에는 이상 없는 엑스레이 필름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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