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역습] '위기 대응 비상 대한민국…전문가들 "시작에 불과, 시간없어" 한목소리

입력 2020-09-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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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재생에너지 확대', 국회 '탄소제로 법적 근거 마련'해야
"오래 전부터 탄소배출 감소, 경제 성장 이뤄낸 유럽 본받아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임에도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OECD 국가 중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월등하게 낮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

“정부는 그린뉴딜을 발표했지만 동시에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는 해외 석탄 투자를 강행했다.”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참정권 캠페인 팀장)

“기후변화 대비가 너무 부족하고 낡은 에너지 체제의 관성에서 빠르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국내 기후환경 전문가들이 적나라하게 지적한 ‘기후변화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기후변화는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를 무섭게 위협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기후위기의 임계점이 될 지구 온도 1.5도 상승이 5년 내 20%의 확률로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2도 상승은 빙상이 녹기 시작하는 분기점이다.

특히 한반도는 세계 최대의 대륙과 해양인 유라시아대륙과 북태평양의 경계에 있어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기후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기후변화는 천천히 변화하는 것처럼 체감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속도는 가속화하고 있으며, 올해 같은 기록적인 대규모 물폭탄과 강력한 태풍 피해는 시작에 불과하고 시간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조금 심한 표현을 쓰자면 “기후변화는 지구를 멸종 직전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현실이 된, 앞으로 닥칠 더 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가야 할 방향, 구체적인 대비책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이동근 한국기후변화학회 회장(서울대 조경생태시스템공학부 교수),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 유승직 한국기후변화학회 부회장(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부 교수),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참정권 캠페인 팀장,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등 전문가 5명의 상황 진단과 제언이다.

◇ ‘게걸음·잘못된 방향’ 정부…“재생에너지 비중 높여야”
무엇보다 정부의 움직임이 가장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속도도 느릴 뿐 아니라 심지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근 교수는 “앞으로 모든 계획과 정책에 기후변화가 포함돼야 한다”면서 “앞으로는 계속 사상 최대 강수, 온도 등의 용어가 수시로 나올 수 있어 탄소 감축은 물론 미래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최근 저탄소 성장을 이끌겠다며 ‘한국판 그린뉴딜’을 내놨지만, 정작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명확한 목표가 제시돼 있지 않아 ‘알맹이 없는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이유진 연구원은 “정부의 그린뉴딜을 그린뉴딜답게 만들어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한국의 경제·사회·교육·문화 정책 전반을 모두 뜯어고치는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그린뉴딜안에 따르면 2025년까지 전기차가 전체 차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에 불과하다. 6월 말 전 세계 14개국, 20개 이상 도시가 이르면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 생산·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대비된다.

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20% 수준까지 올린다는 계획인데 이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900만 톤으로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온실가스 배출 분야별로는 에너지 부문이 86.8%에 달했다. 석탄발전 비중은 세계 4위지만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하위권이다.

김해동 교수는 “2021년부터 구속력을 갖는 ‘2015 파리신기후체제’와 ‘유럽의 탄소국경세 도입,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선언(RE100)한 글로벌 대기업과의 무역거래에 대응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 0’ 법적 근거 필요
정부는 올해 말까지 ‘2030년까지의 기후변화 대응 기여방안(NDC)’과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담은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와 유엔 환경계획의 지적에 따라 ‘매년 온실가스 7.6% 감축, 2030년까지 절반, 2050년까지 0%’로 가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상훈 팀장은 “세계적으로는 영국, 프랑스 등 6개 국가가 ‘탄소제로’를 입법화했고 15개 국가는 정부 정책을 추진하고 있거나 법제화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역시 21대 국회 들어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통과까지 긴 여정이 남아 있다. 정의당은 ‘2050년 0%’를 위한 그린뉴딜특별법, 더불어민주당은 그린뉴딜 기본법 등을 준비 중이지만 해당 산업 축소를 우려하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김해동 교수는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 장기 비전을 만들고 그것을 반드시 실천하도록 하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제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직 교수도 “정치권에서는 가장 먼저 기후변화, 환경개선에 대한 일반 국민의 요구를 정책적으로 반영하고 이를 입법화해야 한다”면서 “보수, 진보 구분 없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상훈 팀장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탄소 순배출을 2050년까지 0으로 만드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면서 “이미 전국 17곳, 200명이 넘는 광역지자체장은 ‘탄소중립 지방정부 실천연대’를 발족해 ‘2050년 탄소배출 순제로’를 약속했다. 이제는 중앙정부가 화답할 차례”라고 꼬집었다.

◇ 위기인식·절박함 부재…기업·개인 함께 가야
기후위기에 대한 절박함이 부족한 인식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기상청, 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에서 기후변화 진전 현황과 전망보고서를 주기적으로 내고 있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세계 경제포럼은 올해 발간한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서 ‘향후 10년간 가장 위험한 5가지 리스크’로 △극단적 기후 △기후변화 대응조치의 실패 △중대한 자연재해 △생물 다양성 훼손과 생태시스템 붕괴 △ 인위적 환경파괴를 꼽았지만,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결국 기후문제를 범국민적 관심사로 끌어내려면 정부는 물론 기업, 개개인 모두 인식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구글과 페이스북, 스타벅스 등 25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RE 100 캠페인에 참여해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약속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볼보 같은 기업들은 이미 탄소순배출 0을 실현했거나 늦어도 2040년까지 탄소배출 0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한국의 기업들도 이 같은 움직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 기후위기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모두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기업의 이윤 창출, 나아가 생존과도 직결된다.

유승직 교수는 “규제 강화 등 세계적 소비와 무역 흐름을 인식해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이와 관련한 기술개발, 신상품 개발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근 교수는 “거창하지 않고도 사무실 조명 끄기, 난방·에어컨 사용 줄이기, 사용하지 않는 장치 전원 끄기 등의 사내 캠페인을 벌여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결국 개개인의 힘이 모이면 국가나 기업의 정책변화를 견인할 수 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도 크다는 의미다.

우선 환경단체의 서명운동에 동참하거나 기후정책을 가진 정당에 투표하는 방법, 나아가 지역 자생단체 등을 통해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의사를 전달할 수도 있다. 또 온라인 시위 등 기후행동에 동참하는 방법도 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신경 써도 기후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구체적인 예가 △육식 줄이기 및 제철 음식 섭취 △대중교통 활용 △저탄소 물품 사용(플라스틱·일회용품 자제) △에너지 절약 등이다.

이동근 교수는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여행”이라며 “비행기가 상공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엄청나다”고 했다.

◇‘탄소감축·경제성장’ 유럽, ‘반면교사’ 삼아야
유럽의 경우 오래전부터 탄소배출을 줄이고 경제가 성장하는 디커플링 단계에 돌입했다. EU는 그린딜을 발표하며 탄소배출을 2050년까지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명확히 했다. 뉴욕시나 로스앤젤레스 등 해외의 지자체들도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면서 2050년 탄소 순배출 제로 목표를 명확히 했다.

이처럼 유럽이 기후변화 대응에 모범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권자들이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대응을 호소하는 후보자를 선호하는 정치의식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문제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으며, 비용이 더 들더라도 에너지효율이 높고 탄소배출이 적은 물품을 기꺼이 구매하는 시민의식도 한몫하고 있다.

김해동 교수는 “독일은 가정용 태양광발전 패널 설치에 보조금이 없다”면서 “경제적으로 더 여유 있는 계층이 더 많은 비용을 내 보급을 확대하고, 지구환경 보호에도 참여토록 하는 것”이라고 시민 주도 재생에너지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이동근 교수는 “외국에서는 개방형 연구실(리빙랩)이 시민과학 정책이나 지역사회 조성에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역시 최근 스마트 도시 등에서 활용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기후변화는 지금 급변 시점에 와 있다. 유럽이 보다 빨리 기후변화 비상행동을 선언하고 실행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지구파멸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의식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경제 규모 7위에 걸맞게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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