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칼럼] 인류의 생명을 가장 많이 구한 ‘소독제’

입력 2020-09-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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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한국 인구 5000만 명 중 100세 이상이 5000명이나 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청동기 시대인 4000년 전 인간의 평균 수명은 겨우 18세였고, 2000년 전인 서기 1세기경 로마제국 남자의 평균 수명은 약 22세였다. 1~2세기 전만 해도 30~40세였던 평균 수명이 두 배인 70~80세로 늘어난 것은 100년도 채 안 된다. 한국의 경우 1900년대 조선인의 평균 수명은 20대 중반 이상, 1930년대엔 30대 중반 이후로 알려진다. 당시에 환갑잔치를 거창하게 벌인 이유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 증가는 놀랍다. 2010년 남자 77.2세, 여자 84세에서 2018년 남자 79.7세, 여자 85.7세로 늘었다. 자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 평균 수명 1위 국가는 89.73세의 모나코, 2위는 84.41세의 일본, 그리고 3위가 83.01세의 한국이라는 통계도 있다. 다소 놀랍지만 조만간 한국이 적어도 일본을 제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세계적으로 한국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지구인의 수명이 급격하게 늘었다. 인간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증가한 배경에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생명유지 방법, 즉 소독제가 있다. 과학사상 가장 불운한 사람 중 한 명으로 알려지는 젬멜바이스(Ignas Philip Semmelweis, 1818~1865)가 소독제의 중요성을 주장했는데, 이 글에선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각종 질병의 치료에서 수술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마취제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을 외과적 수술의 고통에서 구했는데 이와 연계하여 빠뜨릴 수 없는 게 있다. 마취제 덕분에 수술은 용이해졌지만 수술 후의 경과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수술 후 회복을 기다리던 환자들의 수술 부위가 곪으면서 열이 나고 통증이 생기는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나다가 결국엔 의식을 잃고 사망하는 패혈증 때문이다. 일단 패혈증이 일어나면 죽음을 의미하므로 수술에 임하는 의사나 환자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19세기 중순만 해도 수술받은 사람의 거의 70%가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무균처리이다.

올해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마스크를 쓰는 것은 물론 손 씻기가 강조되고 있다. 손은 외부 환경과 직접 접촉하면서 다양한 세균과 바이러스에 노출된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손을 통해 주로 옮는데, 제대로 손을 씻으면 손에 묻은 세균의 99.8%가 사라진다. 또한 손 씻기는 독감을 포함한 호흡기 질환을 21%까지 감소시켜주고, 기타 감염질환을 50~70% 예방해 주는 것으로 알려진다.

학자들은 이처럼 단순한 소독이 인류의 생명을 가장 많이 구한 일등공신이라고 말한다. 무균, 즉 살균처리는 매우 간단한데도 질병 역사에서 상당히 후대에 접목되었다는 데 아이러니가 있다. 소독제는 세균을 죽이거나 성장을 막는 물질이다. 현재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적시적소에서 구하고 있는 항생제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보다 많은 사람을 구하고 있는 소독제에 대해서는 다소 무지한 것은 사실이다.

항생제는 박테리아만을 죽이는 데 반해 소독제는 박테리아를 포함하여 곰팡이, 바이러스 등과 같은 여러 세균을 동시에 죽인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항생제는 온몸에 퍼져 있는 세균을 주사나 약으로 죽이지만, 소독제는 간단히 손을 씻거나 상처 또는 수술 부위에 발라 효과를 낸다. 상처가 나거나 수술을 한 부위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등에 쉽게 감염되므로 소독제를 쓰지 않으면 세균 수가 급격히 증가해 급성 염증과 패혈증이 생긴다.

인간의 피부는 매우 단단한 보호 장벽이므로 세균을 직접 피부에 발라도 대개의 경우 병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세균이 피부 장벽을 넘어 인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철옹성과 같은 피부라도 상처가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처로 피부에 틈이 벌어지면 이 사이로 세균이 얼마든지 침입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처의 크기보다 상처에 닿는 것들에 어떤 균이 묻어 있는가이다.

현대 병원에서는 이를 위해 두 가지를 병행한다. 소독과 멸균이다. 소독은 살아있는 미생물을 제거하는 물리화학적 절차이며, 멸균은 살아 있는 미생물뿐 아니라 아포(포자)까지 제거하는 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이다. 예를 들어 주사 맞기 전에 알코올 솜으로 피부를 닦는 것은 소독이며 수술용 메스를 고온고압기에 넣고 끓이는 것은 멸균이다.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에서 개발된 무균처리법은 박테리아를 소독하는 살균법과 달리 완전한 무균 상태에서 치료하는 것이다. 무균치료법은 우선 수술 전에 환자의 절개 부위를 소독하고 나머지 신체 부분은 살균한 타월과 시트를 싼다. 수술진은 소독한 가운,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술에 사용되는 모든 기자재는 화학적인 방법이나 열로 살균 처리한다. 현재 병원에서 사용되는 방법이다. 또한 소독제는 다양한 병원성 세균 및 바이러스를 빠르게 죽이는 반면에 사람에게 해가 없어야 하며 물에 잘 녹아야 한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지도 9개월이 넘었다. 백신이나 치료제의 개발이 아직 요원한 상황에서 마스크 못지않게 손 씻기와 소독제 사용 등의 위생수칙이 강조되는 것은 손쉬운 방법으로도 우리 몸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세계사의 100대 사건』, 리더스다이제스트, 1995

『의학사의 숨은 이야기』, 예병일, 한울, 1999

『장난꾸러기 돼지들의 화학피크닉』, 조 슈워츠, 바다출판사, 2002

『하리하라의 몸 이야기』, 이은희, 해나무, 2012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정진호, 푸른숲,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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