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오페라의 유령' 주역들 "굉장한 여정...한국 무대는 전 세계의 희망"

입력 2020-08-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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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이보다 더 안전한 곳 없을 것"…조나단 "한국은 제2의 고향"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서머셋팰리스 비즈니스룸에서 '오페라의 유령' 조나단 록스머스, 클레어 라이언, 맷 레이시(왼쪽부터)를 만났다. (사진제공=에스앤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극장이 문을 닫을 때도 한국의 무대는 '현재 진행 중'이었다. 세계는 K 방역에 주목했고, 그 중심엔 내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있었다.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지구 상 유일하게 대작이 공연 중인 곳은 한국뿐"이라고 칭송했고, 영국 문화부 장관이 직접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한국 공연장 운영 시 방역 지침 등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부산에서, 3월부터 8월까지 서울에서 열린 '오페라의 유령' 무대에 오른 건 미국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팀이다. 이 팀의 에너지는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지난 18일부터 다음 달 27일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객석 거리두기' 의무화 조치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무대에 오르던 '오페라의 유령'도 다음 달 6일을 끝으로 종연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서머셋팰리스 비즈니스룸에서 '오페라의 유령' 조나단 록스머스, 클레어 라이언, 맷 레이시를 만났다. 서울 공연이 폐막하고 일주일간 휴식을 취한 후였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기 전이었던 터라 대구 공연을 앞둔 이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비록 공연 기간은 줄었지만, '오페라의 유령' 팀은 대구 일정을 이어간다. 라이언은 "코로나19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도시에 희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오페라의 유령' 팀의 의지가 엿보였다.

"힘든 시기를 보낸 대구 시민들이 2~3시간 동안만이라도 극장에 오셔서 감정을 다 풀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클레어)

"대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었다면 내려가지도 못했을 거예요. 상을 드리듯 뭔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고생하신 대구 분들에게 저희 공연을 보여드리는 것만큼 큰 선물은 없지 않을까요?" (조나단)

다음은 배우들과 일문 일답.

- 서울 공연 중 앙상블 배우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도 했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마무리한 소감을 말해달라.

조나단 "우리가 (한국에) 며칠 있었는지 세어봤다. 23주가 지났더라. 한 번도 그렇게 연속으로 긴 기간 동안 공연한 적은 없었다. 처음인 것 같다. 공연하느라 힘든 줄도 몰랐다. 이번에 쉬면서 피곤함이 몰려왔다. 긴 기간 동안 관객 중 한 명도 확진 받은 적이 없어서 기뻤다."

클레어 "마지막 공연의 커튼이 내려가는 순간 감정이 확 풀리더라. 여러 가지 감정, 안도감도 있었고 행복감, 감사함, 피로함도 있었다. 굉장히 대단한 여정이었던 것 같다. 회복 후 대구로 넘어갈 수 있어서 좋다."

맷 "마라톤 같았다. 전 세계적으로 혼란한 시기에서도 장기적으로 공연해냈다. 집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이 걱정되고 가족과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공연계는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공연한다는 게 조금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안전한 곳이 없지 않나. 모두가 우리를 두 팔 벌려 맞이해주셨기 때문에 안심하고 할 수 있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공연 모습. (사진제공=에스앤코)

- 클레어는 2012년 내한한 경험이 있다. 배우들에게 한국의 매력에 빠질 거라고 단언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는지. 클레어도 한국이 더 좋아졌는지.

클레어 "더 사랑에 빠졌다.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분들의 헌신과 열정, 모든 걸 열심히 하는 파이팅 넘치는 정신이 이번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친구들한테 한국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계속 얘기하고 있다. 한국과 이렇게 연관 지어진 사람일 수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

조나단 "지난주에 처음으로 제가 곧 한국을 떠나야 된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거 같다. 한국이 제2의 고향이 된 것 같다.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돌아가면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힘들 것 같다. 한동안 제 마음은 한국에 있을 거다"

- 코로나 이전과 이후 한국 뮤지컬 시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나.

클레어 "전 세계적으로 라이브극장을 안 하는 추세인데 한국은 여전히 강하게 잘하고 있다. 대단하다. 한국에서 세워준 극장 내 방역 수칙들은 전 세계에서도 본받을 것들이다. 앞으로 (세계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는 길이라고도 생각한다."

맷 "사실 코로나 이후 전 세계 사람들의 눈이 한국의 공연계에 쏠리기 시작한 것 같다. 이전까지 얼마나 큰 시장인지 몰랐다. 미국에 있는 연출, 프로듀서로부터 한국시장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떤 분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어떻게 한국에서 공연될 수 있는지 묻기도 한다.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을 특별히 쓰고 싶다는 이들도 있다."

- 3시간 가까이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보는 한국 관객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맷 "마스크 쓴 분들을 처음 본 건 부산 공연 때였다. 처음엔 '이게 팬데믹인가'라는 생각도 들고, 무서웠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젠 일상이 되지 않았나. 매일 만나는 한국 스태프들의 얼굴을 못 본 지도 정말 오래됐다. 상대의 얼굴을 온전히 보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 같다."

조나단 "마스크를 쓴 관객을 보면 공연이 성공적으로 돌아가고 있고, 팬데믹 속에서도 살아남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오히려 확신도 생긴다. 마스크를 써서 환호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릴 줄 알았는데, 한국분들이 정말 목청이 좋더라." (웃음)

-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덕분에 '캣츠', '노트르담 드 파리'도 한국에 올 수 있게 됐다.

맷 "한국의 공연은 모든 공연게의 희망이 됐다. 나만 무대에 서서 친구들이 질투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들에게 힘이 됐다고 좋아하더라."

조나단 "'캣츠'에 출연하는 분들이 최근 공연을 보러 왔다. 그분들은 모든 것이 문 닫은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지 않나. 그분들이 '무대 위에 오르는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게 특별하다', '소중한 순간'이라고 말하더라. 이 시기에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우리는 항상 '한국에 있어서 천만다행이다'라고 말한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곧 그들도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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